세종에 살리라…‘고려인 임난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정부청사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세종시에 거주한다는 것 자체가, 임난수 장군의 은덕을 입고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월산 등성이길에는 임난수 장군이, 이미 망한 고려를 생각하며 앉아있었다는 상려암이 있고, 그 산자락에는 그분이 살았다는 숭모각이 있는데, 그 대문 앞에는, 그분이 심으셨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오백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금강을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장군의 아들이 세웠다는 독락정에는 세종대왕이 내렸다는 ‘임씨가묘’라는 액자까지 걸려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공조전서까지 지낸 장군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성계가 만류하는데도 이곳에 은거했단다. 말하자면 이성계가 싫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는 것인데,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세종대왕이 신숙주의 아버지를 불러

“임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액자를 써서 보내도록 하시오. “

라고, 할아버지가 싫다며 떠났다는 자의 덕을 기리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 만큼 장군의 충절이 고결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알게 되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넋이야 있건 없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라고 변치 않는 충절을 노래했다는 길재나 정몽주가 떠올랐으나, 그보다 더한 것은, 임 장군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도대체 제주도에 언제 어떤 반란이 있었다는 거지?”

라는 의문이 생겨, 여기 저기 뒤져 보았더니, 제주도에서 말을 길러 원에 바치던 목호, 즉 말을 기르던(牧) 몽고의 오랑캐(胡)들이 1374년에 반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몽고의 징기스칸은 원을 건국하자, 천하무적의 기병대를 이끌고 말발굽이 닿는 모든 나라를 정벌했으나 이웃하는 고려는 정벌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자 그 후손들이 여섯 차례나 침범했고, 고려는 그런 그들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며 대항했다.

그러다 힘이 부친 신하들은 왕과 함께 강화도로 피난하고, 국민들만 온갖 수모를 격을 때, 별동대 삼별초가 저항하며 제주도 까지 쫓기다, 결국에는, 그곳에서 장렬하게 전멸하고 만다.  

“아니,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있다니!”

삼별초를 쫓아 제주도에 건너간 몽고인들은 그곳이 지상낙원이라며, 눌러앉아 살기 시작하여 많을 때는 1700명이나 거주했다. 그들은 제주도 여인과 혼인하여, 몽고인의 피를 받은 후손을 늘려가면서 말을 기르더니, 그것을 고국인 원에 바쳤다.

그렇게 100년이 지나자, 영원할 것 같았던 원도, 새로 일어난 명에 밀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안 고려는 원을 버리고 명과 교류하려 했다. 그러자 명은 제주도의 말 2천 필을 헌상하라는 요구를 했고,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 조선이 그 지시에 따르려 하자, 목호들은

“우리가 기른 말을 적국인 명에 바칠 수는 없다.”

 며 극렬히 반대하더니, 나중에는 고려 조정이 보낸 사자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을 안 조정은 최영 장군에게 3만의 군대와 3백여 척의 전함을 주며

“목호의 난을 정벌하라.”

는 명을 내려, 임난수 장군도 정벌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건너간 최영 장군은 11척의 전함을 보내 항복을 권했으나, 3천명의 기병대를 조직하고 대기하던 목호들이 그 말을 따를 리 없다. 항복은 커녕 최영 장군이 보낸 문서를 찢어버리고, 상륙한 고려군을 몰살시켰다.

세계를 정복했다는 기마병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려주는 일이었는데, 반란군은 목호만이 아니라, 목호의 피를 받은 후손들은 물론, 제주도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란군에 주민들이 합세한 것은 오로지 관리들 탓이었다. 제주도에 부임하는 관리들은 주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온갖 구실을 붙여 수탈하려 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쫓아내기라도 하면,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다시 오는 자도 있었다.

그런 관리들의 탐욕에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조정의 관리보다 목호들이 낫다.”

고려 관리들에 대한 원한을 억누르지 못하고 목호의 편에 섰다.
최영 장군이 왕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에 참가했기 때문에 정벌전은 쉽게 끝나지 않고 한 달이나 계속되었다.

“관리들이 주민을 조금만 사랑했어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임난수 장군은 죽을 각오로 대드는 주민들을 보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보고만 있을 수도 없어, 나라에 충성한다는 일념으로 칼로 베고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병사들이 지쳐서 뒤로 처져도 장군은 지치는 일 없이 앞장서서 나아갔다. 그러다

“아뿔사”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르는 칼에 오른 팔을 베이고 말았다. 허전하여 돌아다보았더니, 팔이 잘려나간 곳에서 피가 쏟아지고, 땅에 뒹구는 팔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장군은 놀라지도 않고 그것을 화살통에 주워 담고, 다시 칼을 휘둘렀다. 그런 장군의 기세에 눌린 목호들은 

“세계를 정벌한 우리도 두려워하지 않는 천하제일의 장수로다.”

장군의 기세에 눌려 흩어지기 시작하여, 한 달이나 끌던 정벌전도 끝나갔다.

■글속에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의 상상력이 들어갔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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