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오피니언
[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방축천의 왕버들’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8.10  18:16:4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권오엽 명예교수.

세종정부청사의 국가보훈처 앞을 흐르는 방축천에는 200년 이상이나 세상을 살았다는 왕버들 세 그루가 있다, 연륜에서 빚어나는 풍류가 오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80 평생에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없었다.”

혼잣말을 하며 걸어오던 노인이 왕버들 아래에 앉는데, 온 몸에서 환희가 넘쳐흐른다. 

“나는 부모를 잘 만나 배곯는 일 없이,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다녔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연애도 했고, 좋은 직장에서 임원까지 했으니, 아쉬울 게 없는 인생이었어. 외국여행이 어려울 때, 나는 국교도 없는 중국과 소련에도 다녀왔지. 그때 화장품이라도 하나 사다주면, 나를 참 부러워했어.”

행복 타령에서 알코올 냄새가 베어나오는 것이 기분 좋게 한잔 한 모양이다.

“그런 나에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장가를 안가는 거야. 40이 넘어서 겨우 가기는 갔는데, 이번에는 손자를 안 낳아 주쟎아. 그러다 3년이 지난 오늘에야 손자를 낳았다지 뭐야. 그래서 한 잔 했지,”

입가에 흰 거품이 이는 것도 모르고 행복 타령을 해대더니

“그래, 왕버드님, 여기에 계시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셨겠네요.”

갑자기 왕버들에게 말을 걸어, 왕버들을 놀래켰다. 그런데 왕버들도 심심했던지, 노인이 말을 걸자말자, 가지를 흔들면서 입을 연다.

“그렇다네,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네, 자네처럼 행복타령을 하는 사람, 세상 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사람, 별별 사람이 다 있었지. 보아하니 외지에서 이주한 사람 같으니, 세종시가 생길 때의 이야길 해주겠네,”

200년이나 살아서 그런지 노인이 외지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본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이곳은 하늘이 정해준 명당이라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여느 곳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었지. 특히 산업이 발전하면서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게 된 것도 여는 농촌과 똑 같았어, 노인들은 쉬지 않고 일했지만 생활은 윤택해지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애써 농사지은 것을 도회지의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것을 낙으로 알며 살더라고, 자식들이 고마워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왕버들은 도시에 나간 자식들을 좋게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말야, 어쩌다 찾아온 자식들이, 논밭을 팔아서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조르는 일이었어, 천하의 명당을 팔 수 없다는 부모를 어리석다고 윽박지르는 자식도 있었지. 그러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내고 돌아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과자 봉지 하나 달랑 들고 와서는, 다시 조르다 돌아가곤 그랬지. 그 때마다 부모들은 이곳에 와서 깡소주를 들이키다 돌아갔는데, 그때의 탄식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네.”
“아니 그런 불효자식들이 있을 수 있나.”

노인이 벌컥 화를 냈으나, 왕버들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특히 임풍수라는 노인의 경우는 심했어. 누구보다도 자식들을 애지중지하는 사람이었는데, 땅을 팔아서 사업자금을 대주면 호강시켜드리겠다는 말은 듣지 않더군. 그러자 자식들이 욕까지 하더라니까. 인륜이고 뭐고 없는 막장이었지. 그러다 하늘이 도우셔서, 이곳에 행정도시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엄청남 보상금을 받게 되었지. 천하의 명당이라는 것을 세종시 건설이 입증해준 거지.”

“그러면 동기 친척 간에 싸움이 나고 야단났겠군요.”

큰돈이 생기면 피붙이끼리 불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렇다네. 토지 보상금이 나오자, 이곳은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나타나는 자식들로 북새통이었지. 세상의 효자 효녀는 전부 이곳 출신이라는 우스겟소리도 있었지. 어쨌든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고 혈육 간에 아우성치는데 목불인견이었어.”

왕버들은 그때의 일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임풍수의 집은 좀 달랐어. 임풍수는 보상금을 받자 자식들을 불러 모으더니, 자식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나누어 주는데, 배포가 보통이 아니더라고, 통큰 아버지의 공정한 분배로 혈육간에 다투는 일없이 끝났지. 돌아갈 때 모두 입이 찌져지게 웃더라고,”

“세종시가 안겨준 행복이었네요.”

“그렇지. 세종시가 생기는 바람에, 토지를 소중히 여긴 사람, 욕심을 덜 내던 사람들은 엄청난 복을 받은 셈이지. 임풍수는 세종시 덕택으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며, 지금 자네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 앉아 웃는데, 참 행복해 보였어. 나까지 행복해지더라니까.”

왕버들이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입을 다문는데,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다음에 또 찾아오라는 것 같았다.

세종매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충현로 28, 대산빌딩 202호  |  대표전화 : 044) 867-6676~7  |  팩스 : 044) 862-0030
등록번호 : 세종, 가00007   |  발행인 : 주식회사 세종매일 이평선  |  편집인 : 이평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평선
Copyright © 2017 세종매일.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