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어느 날 내공이 깊으신 신학자로부터 조셉캠벨의 영웅서사 활용 이란 주제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조셉캠벨은 미국의 유명한 신화종교 학자이자 비교신화 학자이다.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기도 한다. 소년 시절 북미대륙 원주민의 신화와 아더왕 전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한다.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신화를 가르치다가 사퇴하고 오두막에 들어가 3년여 동안 신화 연구에만 온 정열을 쏟는다.

그 후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서 신화 강의를 하면서 유명하다 못해 최고의 인물로 거듭난다.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신화를 집약하여 연구한 것을 영웅(英雄)에 집적(集積)했는데, 그것이 바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란 책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영웅이란다.

단지 영웅이 되지 못한 것 뿐 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기에 누구나 한번쯤은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 이 책안에 영웅이 되는 길이 있다고 권장하시는 잔잔한 카리스마에 누구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웅서사의 길에는 12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먼저 일상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 안에서는 누구나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영웅은 타인으로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더 열심히 해보라는 모험의 소명을 받게 된단다.

그러다가 나는 못해. 싫어라고 하는 ‘소명의 거부’ 단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 멘토를 만나거나 혹은 ‘정신적인 스승’을 만나서 다시 그 길을 가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첫 관문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관문에는 ‘관문 수호자’가 지키고 있어서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문을 통과하여 가다가 소명과 동기를 부여하는 ‘전령관’을 만나게 된다. 전령관은 사람 혹은 물건이 될 수 있는데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자극을 주는 협력자가 필요한 단계라 할 것이다.

그리고 영웅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 즉, 규정하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장애물이라는 ‘변신자재자’를 만난다. 예를 들면 삼손과 데릴라를 말함인데, 삼손은 그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영웅의 삶에는 돈키호테와 삼초와의 관계처럼, ‘협력자’를 만나게 된다. 협력자를 잘 만나는 것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 할 것이다.

영웅이 가는 길에는 장난꾸러기와 익살꾼들이 등장하여 해학과 재미를 더해준다. 즉 손오공과 저팔계의 등장이다.

또 가다보면 어두운 그림자를 만나 어려움에 처한다.
원수가 등장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고, 죽었지만 다시 부활 하는 단계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힘들 때는 멘토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멘토가 때론 신의 음성과 신령한 지혜가 될 수도 있다. 즉 신념과 고귀한 뜻이 맨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의 특성은 하나같이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영웅은 보호하고 봉사 한다는 뜻을 의미 하는데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자기 자신이나 집단을 포기 할 수 있는 사람, 심지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뼈에 사무치는 고난과 시련을 이겨낼 열정과 죽음을 불사한 희생은 없고 영웅 행세만 하려고 하느냐!는 질타와 충고에 우린 할 말이 없다. 아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서사의 12단계 과정이 힘들고, 어렵고, 두려워서 대부분 중간에 포기하고 만단다. 그러다보니 우린 늘 ‘일생 세계’에서 안주하고 있다는 훈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반면에 현대의 영웅 마틴루터킹은 죽음을 불사한 모험의 삶을 살았기에 인류를 구원시키고 흑인들에게 인권이란 선물을 안겨 주지 않았던가! 또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은 스승 유의태란 협력자가 있었기에 오늘 날까지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요즘은 저를 나타내기 위한 봉사와 저만 살면 된다는 가롯유다 같은 놈들이 많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롯유다가 누구인가! 예수님을 팔아먹은 놈이 아닌가! 그런 놈들이 백주에 설쳐대고 있으니 참! 묘한 세상 아닌가!

또 영웅이 가는 길에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개구리와 전갈이 우연히 둘이 만나게 되었다.

개구리야! 요기 시냇물 건너는데 네 등에다 나 좀 태워달라고 한다. 개구리는 싫다고 한다. 네가 물면 나는 죽는다고 말하자.

야! 내가 너를 물면 나도 죽는데 내가 너를 왜 무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태워달라고 한다. 그래서 개구리는 태워준다. 개구리가 시냇물을 건너는데 시냇물 중간쯤에서 전갈이 개구리를 물었다.

둘 다 죽게 되었다. 개구리가 묻기를 야! 너 나 안 문다고 하더니 왜! 물었어? 항의하자. 전갈이 말했다. 나! 전갈이잖아. 전갈!

재미있는 얘기라고 하기 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탄식하는 것 같아 맘이 무겁기만 하다.

멀리도 아닌 등을 맞대고 있는 중에도 신뢰와 보은(報恩)을 순식간에 파괴해버리는 험악한 사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말일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영웅들이 많아야 되는데 영웅다운 영웅은 볼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들 한다.

5대 비리에 연루된 자는 인사에 등용하지 않겠다는 두 번의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가 아니다. 그런 행위를 범한 자들은 반드시 불이익을 당한다는 사고방식을 청년과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 교훈을 남길 좋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정말 아쉽기 그지없다.

혹여! 나만의 생각이란 말인가!

지금은 모두가 자기중심적으로 살다보니 시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억울한 누명을 쓴 자들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 백의종군 편이 나온다. 왜놈들에게 이적 행위를 했다하여 장군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한다.

아! 이렇게 원통하고 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조선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늘 희생적 이었건만 왕을 비롯한 간신들의 무자비한 행동에 조선은 그렇게 초토화 되어간다.

좌의정 유성룡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충정은 땅에 묻히고 마는데, 원통하게도 원균을 비롯한 간신배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이렇게 역사는 잔인하게 영웅을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오늘 모처럼 만에 영웅다운 영웅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귀한 말씀으로 인간 이해를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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