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 ‘부용리 장군봉’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아버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둘째 왕자 부는 하직 인사를 드리고 부용리의 산으로 날아갔다.

북진하던 강이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물굽이가 잘 보이는 곳이다. 부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을 오르내리며, 상채기가 난 곳은 어루만져주고 모자란 곳은 채워주었다.

부가 몰고 오신 바람과 불어 모으는 눈비로
산에는 꽃이 피고  들에는 오곡이 풍성하네   

이곳 저곳에서 부의 은덕을 칭송하는 노래가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와 밝은 달을 바라보며 쉬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부가 찾아가 보았더니, 두 모녀가 마주 앉아 울고 있었다.

“어인 일로 울고 있는가?”

부가 우는 이유를 묻자,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사연을 들려 준다.

“저는 남편과 세 딸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년 전, 소나기가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소나기를 뚫고 나타난 이무기가 남편을 죽이고 큰 딸을 데려 가며, 세 딸만 데려가면 용이 될 수 있으니, 내년에 다시 오겠다더니, 작년에는 둘째 딸을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하나 남은 막내딸을 데려간답니다.”

“이런 고약한 놈. 그냥 두지 않겠다.”

사연을 들은 부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두 모녀를 안전한 곳에 숨겼다. 그리고 막내딸의 옷을 빌려 입고 마루에 앉아 이무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니, 기특하다. 이제 겨우 용이 되겠구나.”

반식경이 지나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뚫고 나타난 이무기가 오랜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며 혀를 날름거리더니, 꼬리로 낭자의 옷을 빌려 입은 부를 휘감으려 했다.

“저까지 데려가면, 어머님은 누가 보살핍니까?”

부가 막내딸의 목소리로, 어머니 걱정을 하며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이무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꼬리로 휘감으려 했다.

“이런 인정사정도 없는 놈, 내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여장을 한 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치마 밑에 숨겨두었던 검을 이무기의 꼬리에 꽂았다. 검이 이무기의 꼬리를 뚫고 땅속 깊이 박혔다. 깜짝 놀란 이무기가 비명을 지르며 꼬리를 빼려 했으나, 나뭇가지에 걸린 연처럼 긴 몸뚱아리가 좌우로 흔들릴 뿐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예 알고 말고요. 잘못했으니 목숨만 살려 주세요.”

  그제야 부를 알아본 이무기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어찌나 애절하게 비는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는 이무기의 꼬리에 꽂았던 검을 뽑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신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이무기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피 흐르는 꼬리를 질질 끌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희 모녀가 장군님 시중을 들게 해주세요.”

이무기를 물리치고 돌아가려는 부에게 모녀는 같이 살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죽이려던 이무기를 살려줄 정도로 정이 많은 부는, 간절한 모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나의 옆봉우리에서 살도록하라.”

자기가 사는 옆봉우리에 살게 해주었다. 그날부터 모녀는 부를 지극정성으로 시중드는데, 부가 가장 놀란 것은, 모녀의 노랫가락이었다. 모녀가 조용히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온 몸에 힘이 솟아나고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그러지 말고 마음껏 노래하도록 하라.”

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노래하는 모녀에게 마음껏 노래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두 모녀는 기뻐하며 목청을 가다듬더니

“꾀꼴, 꾀꼴, 꾀꾀꼴!”

 목청 높혀 노래하는데, 듣는 부의 마음이 구름처럼 가벼워졌다.

“앞으로는 노래만 부르도록하라.”

부는 두 모녀에게 다른 일은 그만 두고 노래만 부르게 하여, 부가 다스리는 산에는 모녀가 “꾀꼴”거리는 노랫가락이 끊임 없이 퍼져나가자, 동물들은 가볍게 산속을 뛰어다녔고,초목들의 이파리는 더욱 싱싱해졌다.
 
그때부터 세상사람들은 부가 사는 봉우리를 장군봉이라 불렀고, 모녀가 사는 봉우리는 꾀꼬리봉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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