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 ‘금강 이야기’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옛날 옛날, 그것도 아주 먼 옛날, 가벼운 것은 위로 떠올라 하늘이 되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는데, 뜨거운 땅이 뒤틀려 식으면서, 높은 곳은 산이 되고 낮은 곳은 강이 되었다. 그 뒤로도 산에 고인 물이 계곡으로 흘러내리며 물줄기를 이루었다.

“옥황상제님, 저렇게 흩어진 물줄기들을 하나로 모아서 흐르게 하면 어떨까요.”
“그게 좋겠다. 네가 한 번 그렇게 해보거라.”

이리 저리 어지럽게 흐르는 물줄기들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던 천자가, 하나로 모아서 흐르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여, 옥황상제의 허가를 받자, 곧장 구름을 불러타고 신봉산으로 내려가, 호리병에 떠온 물을 “토옥”하고 한 방울 떨어뜨리자, 또르르 구르며

“여러분 같이 흐르지 않겠습니까.”

풀과 나뭇잎에서 매달려 대롱거리는 물방울들에게 같이 가자고 권했다. 그때까지 이파리에 붙어서 햇빛에 증발되기만을 기다리던 물방울들이, 그말을 듣자, 우르르 따라나선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중요하다니까.”

금새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것을 바라보던 천자가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서둘러 구름을 타고 뒤따라가면서, 이번에는 노란 주머니에서 노란 알갱이를 꺼내더니, 하나씩 둘씩 떨어뜨린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물줄기에 떨어진 알갱이들은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기도 하고 물풀이 되어 하늘거리기도 하는 것 아닌가!

“북으로! 북으로!”

흐를수록 굵어지는 물줄기는 쉬지 않고 북쪽을 향하여 흐르다. 왼쪽이 막히면 오른쪽으로 돌고, 오른쪽이 막히면 왼쪽으로 돌아 나갔다. 그러다 앞이 막히면 뒤로 돌아서 나아가다가, 진안에서 만난 구량천과 진안천을 합류시키더니, 금산과 옥천을 지나면서는

“어이, 초강천, 송천천, 보청천, 너희들도 같이 가자.”

만나는 친구마다 불러모았다. 새로 합쳐진 물길들은, 천자가 떨어뜨린 물과 같이 흐르게 된 것이 영광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천자는 새로운 곳에 이를 때마다

“이곳은 과일의 명산지가 될 것이고, 저곳은 약초의 명산지가 될 것이다.”

노란 주머니의 노란 알갱이를 뿌리며 축복의 말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천자가 강을 만들며 내려오신다네.”

새로운 강이 흘러온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지자, 그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신들도 나타나 손을 흔들며, 자기들이 사는 곳에 어울리는 씨를 뿌려달라고 요구했다. 천자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씨앗을 뿌려주어, 물줄기가 지나간 곳은 천국처럼 변해갔다.

점점 커지며 흐르는 물줄기가 이리 꾸불 저리 꾸불, 길을 내며 내려가다, 대전에 이르러서는 갑천을 합류시키고, 더 세차게 흐르는데, 길목을 가로막고 노래하는 신들이 있다.

흘러오는 물줄기가 비단결이로구나.
방향을 바꿀까 말까 망설이지 마오

천자가 구름 위에서 들어보니,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방향을, 이제는 서남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노래였다. 그 노랫가락이 얼마나 흥겨운지, 하늘을 날던 새들이 춤추며 모여든다. 천자도 노랫가락에 취하여 춤을 추며, 노랫소리에 맞추어 방향을 바꾸었다.

잠시 서성거리던 물줄기도 방향을 바꾸어 서남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형님 이제 오십니까. 진즉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망이산에서 흘러오며 백곡천 무심천 천수천을 만나 같이 왔다는 미호천이, 반갑게 인사하며 합류하는데, 어찌나 활기찬지 “철석”하고 합쳐지는 소리가 전월산 위로 울려퍼진다.

“이곳이야 말로 천하 제일의 산수다. 인걸이 모여들 산천이로다.”

미호천의 합류로 소용돌이치는 물줄기를 내려다 보던 천자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며 멈춰서더니, 앞서서 흘러가는 물줄기를 향해 크게 소리친다.

“이곳에 하늘의 기운을 심고 따라 갈테니, 공주와 부여를 지나 군산으로 가거라.”

 
 

이미 정안천과 석정천을 합류시키고 공주 쪽으로 달려가는 물줄기에게, 흘러갈 곳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오른 손을 이마에 대고 장남평야를 둘러싼 산들을 휘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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