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면 해 뜨기 직전에만 불어오던 바람이 구름을 몰아가고, 어둠이 걷히며 하늘이 열리는 걸 볼 수 있었제.”
“…”
“검푸른 허공을 가르며 나는 새들을 볼 수 있었고마.”
“…”

밤새 숨죽여 흐르던 시냇물이 수런대고 그 위로 물안개보다 짙은 밥 짓는 연기가 흘러갔다. 그 길에서 그와 처지가 비슷한 조무래기들을 만났고, 벌써 바지게 가득 꼴을 쟁여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와 마주했다.

“내는 아버지처럼 늙고 싶었제.”
“…
“결정적으로 농민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더 이상 내비치지 않게 된 건, 이십대 후반에 고향의 농민회 형님들과 술자리를 갖고 나서였고마. ”
“…”
“그이들은 내 말을 농담으로 치부하고 깔깔대다가 진실임을 알게 되자 정색을 하며 무섭게 으르렁 거렸제.”
“그건 니가 시골에선 유일한 대학생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었을거야.”
“거의 협박수준이었는기라.”
“…”

“내는 내대로 내 의지를 떠보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뻗댔는데, 결국 울상이 되어 두 손을 들어야 했고마.”
“억울하기까지 했겠어.”
“농민이 되고 싶다는 꿈을 다른 누구도 아닌 농민에게 비난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제.” 
“…”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갑오농민전쟁 사료를 찾다가 농민군을 학살했던 일본군의 기록을 보게 되었제.”
“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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