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기슭에 30여 가구 올망졸망 모인 동네, 읍내에서 사십리는 더 들어가는 마을이 소년이 자란 곳이다. 산골 소년이 자라고 늙으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바,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꽃, 춘화 걸려있던 역전 이발소와 밤마다 등 멱을 하러 엎드리던 담장 너머 봉순댁, 오로지 농사만 아는 일자무식 아버지였다.

그러한 당신께서 멀찍이서 외치던 소리가 있었다.

“봉준아, 소 받거레이.”

슬픔과 고통으로 한 번 구겨진 사람은 제 아무리 반듯이 펴놓는다 해도, 은박지가 그러하듯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는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해를 기억한다. 나른한 휴일 오후였고 태양은 맹금류처럼 서쪽 하늘로 느리게 활강하는 중, 마을 회관 앞에서 놀던 그에게 동네 어른 가운데 누군가 달려와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전했다.

“탈곡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절단되었다고 했제. 기 말을 전하던 동네 어른의 말투는 안도와 경악을 오갔는데,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로서는 아버지의 오른손목이 뭉텅 잘려나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건지, 집게손가락이 잘려나간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만큼 슬픈 일이라는 건지, 헤아리기 쉽지 않았제. 집으로 돌아간 내는 마루 끝에 앉아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제. 땅거미가 내리고 여기저기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솟아올랐제. 병원에 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어둠이 번져오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난생처음 어떤 방식으로 세상이 어두워지는가를 알게 된 듯 한 기분이었제.”

소가 울어댔고 개가 낑낑거렸다. 쇠죽을 쑤어 외양간 여물통에 부어주고 개밥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할머니의 상을 치른 지 삼년이 되지 않았기에 마루 한 귀퉁이에는 상정이 마련되어 있었제. 어메가 아침, 저녁으로 할머니 영정 앞에 밥과 국을 올렸던 걸 떠올린 내는 부엌의 큰 솥을 부신 뒤 쌀을 안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제. 설익은 밥 한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를 상식으로 올리고 나니, 더는 할 일이 없었제.

기러자 마당을 채운 어둠이 내게 오락 덤벼드는 것 같았고,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숨을 죽인 채 터뜨리는 비명이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제. 자정 즈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왔으나 우리 식구 가운데 누구도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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