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는 아무래도 지상에 내려앉은 붉은 저녁노을의 식솔들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가리키기라도 하듯, 꽃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득히 멀어진 그 모든 곳으로 손 뻗으면 땡땡하게 뭉친 추억의 종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은, 산딸기. 댕그랑, 댕그랑… 

들길은 아이들이 흰 구름과 누가 빨리 나가 내기라도 하듯 달려가는 길이다. 하굣길 아이들이 신발주머니를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집으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때로는 어머니가 한 소쿠리 감자를 캐어 머리에 이고 오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들길에 여름내 염소처럼 얼굴이 까맣게 탄 아이들이 달려가면 가을이 시작된다. 

미군부대에서 나눠주던 노란 옥수수 빵을 들고 고개 너머 읍내로 영화단체관람을 나갔던 일들.

어린 시절 겪어낸 가난과 구차함이 따스하고,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것은 지친 자신의 중년의 삶을 추스르는 힘이 된다. 이제 연결이 되지 않는 떠오르는 얼굴이 봉준이에게 있다.

“아버지 예, 밥 드셨어예?”
“날이 많이 춥지예?”
“제는 고깃국 끓여 먹었는기라 예.”
“기냥 생각나서 예.”

공중전화로나마 간혹 안부를 묻던 시절이었다.

“기래, 별일 없고마?”
“야, 무슨 일 있는 거 아이가?”

봄볕 같은 아버지의 말씀을 되뇌며 아버지를 또 생각한다.

가난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봉준이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아버지 얘기는 한 번도 봉준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소년네 집 뒤란은 바람 울고, 장 닭 홰치는 소리로 늘 수런거렸다. 마당엔 사철 감꽃 져 내리는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논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의 아버지는 동네 어귀부터 소리를 질렀다.
“봉준아, 뭐하노. 소 받거레이.”

밑으로 동생이 있었으나 소 받는 일은 언제나 봉준이 몫이었다. 전교생이 700명을 겨우 넘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동네 어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였다.

물꼬라는 것이 다 큰 어른이 드잡이를 해서라도 빼앗겨선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소년은 까까머리 중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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