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물을 삼키고 수저를 들었지만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마치 생쌀을 삼키는 것처럼 김치찌개를 대, 여섯 수저를 뜨고는 내려놓았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물고 봉준이는 오늘도 식당에 나갔다. 낮엔 주로 하림이가 맡고 밤에 봉준이가 교대로 나갔다.

하림이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은 목이 좋은 아파트 밀집지대의 사거리, 큰 대로변에 있어 손님이 제법 꼬였다.

젊은 시절이 고단한 것은 실패가 많고 확실함이 적기 때문이며, 젊은 시절이 소중한 것은 날개를 키우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애환과 세상살이의 고난함을 투박하고 무뚝뚝하게 살아가는 노동운동가이다. 늘 진지한 표정이다.

“내는 기리케 살아왔고, 기리케 노동운동을 한데이.”

고집이 또렷이 읽힌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해, 약삭빠른 계산 따위는 영 숙맥이고, 모양 꾸며 얼굴 내미는 일도 딴 사람 얘기다. 상당히 진지하고 믿음직스러운 삶을 보여준다. 매사에 완결성이 있는 이 시대의 진부한 혁명주체이다.

추상적인 담론 보다는 사물의 안쪽을 묵묵히 투시한다.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몰래 울며 둥근 상을 지니게 됐다. 그래서 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끝나면 전봉준이 아니다.

사람이 부딪치며 살다보면 피지 못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남긴 다는 이치를 그는 온몸으로 알고 있는 노동운동가이다. 거칠은 경상도 억양.

“몰라서 그카나? 그냥 알아서 하믄 되지 안노.”

늘 그런식이다. 노동운동에 발 디딘지 수년이 지났고, 그 세월 동안 노동계의 온갖 궂은일을 맡아왔건만, 그는 좀체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생의 상처를 보듬어온 정작 자신의 상처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그는 지친 삶에 대한 치유와 생활을 건져낸다.

등교하는 아들의 교복바지가 젖을세라 지게 작대기로 산길의 이슬을 털어주시던 어머니, 단옷날이면 장에 나가 부채와 담뱃대를 사 두었다 곗날 친구들에게 나눠주시던 할아버지. 여름방학 토끼당번 짝꿍이던 ‘순아’가 건네준 풋풋한 자두의 추억.

한적한 산길을 가다보면 산딸기꽃이 지천이었다. 줄딸기, 멍석딸기, 곰딸기, 고무딸기, 복분자딸기… 저마다의 빛깔로 꽃을 피우곤 했다.

배고픈 시절이었기에 그 얼마나 산딸기를 기다렸던가. 살구, 오디와 더불어 왕복 이십리 등·하굣길을 환하게 밝히던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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