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원수산과 문필봉’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금강 가까운 곳에 붓모양의 산이 있었다.
어린 연부가 자주 놀러 다니는 산이다. 진달래꽃이 활짝 핀 봄날에 연부는 꽃구경을 갔다가 바위에 앉아서 글을 읽는 노인을 보았다. 노인의 글 읽는 소리가 듣기 좋아 매일 같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인은 보이지 않고 책만 놓여 있었다. 그것을 들추어 보았으나 알 수 없는 글자들로 가득했다.

“왜, 글을 배우고 싶으냐?”

언제 나타났는지 노인이 뒤에 서서 물었다.

연부는“예”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연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손가락으로 산등성이의 소나무를 가리켰다. 순간 가지에 달린 솔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가서 주워오너라.”

연부는 노인이 시킨 대로 솔방울을 주우려 달려가다 우뚝 섰다. 소나무 아래에는 솔방울이 아니라 금덩이가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어다 드렸더니 노인은 그것을 다시 소나무를 향해 던졌고, 공중을 날아간 금덩이들은 솔방울로 변하며 소나무에 다시 매달렸다.

“너의 학비는 이렇게 받았으니 글을 배우도록 하라.”

노인은 매일 같이 글 읽는 소리를 들으러 오는 연부를 어여삐 여겨 제자로 삼은 것이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연부는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 없이 열심히 공부하여 나날이 발전했다. 글공부를 시작하여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스승은 편지 한통을 남겨 놓고 말도 없이 행적을 감추셨다.

“이제부터는 혼자 공부하여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면학하며 독립하라는 편지였다. 놀라서 이리저리 찾아보았으나 스승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홀로 된 것이 슬펐으나, 글을 읽는 것이 보은하는 길이라며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적군의 침입을 알리러 도성에 간다는 병사가 내용을 알려 달라며 서찰을 내밀었다. 그 서찰을 읽던 연부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그 서찰을 가지고 가는 계동이라는 병사를 즉시 죽이라는 내용이었다. 

“저의 공을 시기하는 장수의 모함입니다. 제가 무식해서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안 계동은 연부보다 10살이나 더 많은데도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간절히 애원할 뿐만 아니라 범삼치 않은 인물로 보였기 때문에, 연부는 그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자

“이 정도면 무인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계동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그 뒤로도 연부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써서 나날이 명성이 높아졌다. 그 소문을 들은 호족들이 서로 모셔가려 했으나, 연부는 모두 거절하고 글을 읽었다.

그 스승을 계동이 다시 찾은 것은 5년 후였다. 무술은 물론 문장에도 능한 계동은 옛날에 자기를 모함했던 장수까지 제치고 장군이 되어, 임금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연부가 장군의 스승이라니, 계동장군이 가서 모셔 오시지요.”

인재를 아끼는 임금이 연부의 소문을 듣고, 높은 벼슬을 내리고 싶으니 모셔오라는 명을 계동에게 내린 것이다. 출세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제자 의 말을 들은 연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금이 계시는 쪽을 향해 세 번 절하고 나서
“임금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벼슬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중히 벼슬을 사양했다. 스승의 인품을 잘 아는 계동은 더 이상 권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라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나오셔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국가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연부는 그것까지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 후로도 출사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산을 문필봉이라 불렀고, 문필봉 자락에서 학문을 닦으면 벼슬에 오른다는 소문이 퍼져, 붓 먹 벼루 종이의 문필사우를 싸들고 찾아드는 학동들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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