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부모산의 노루’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금강을 바라보는 산이 있는데, 그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효자가 많았다.

그들은 부모만이 아니라 동네 어른들을 하늘처럼 섬기는데, 전독해라는 아이만은 달랐다. 그는 부모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면서도 자기야말로 효자 중의 효자라는 말을 했다.

“어미닭은 불에 타죽으면서도 날개로 병아리를 보호한다잖은가.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부모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위해 말썽을 피운다. 그런 내가 효자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부모를 위해 말썽을 피운다는 말을 하며 어린아이를 때리거나 어른을 보아도 인사를 안 하는 등 부모가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했다. 그날도 책을 보라는 부모의 말을 어기고 산에 갔으나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어미노루를 돌보는 새끼를 보았다.

호랑이에게 할퀴었는지 멧돼지에게 받혔는지 피범벅이 된 어미의 몸을 열심히 핥아내고 있었다. 계곡의 물을 머금어다 씻어내기도 하고 입에 흘러 넣기도 했다.

“어미 때문에 새끼가 고생이 많다. 어미가 저러면 안 되지.”

전독해는 어미가 잘못하여 새끼에게 고생을 시킨다는 생각을 하며 투덜거렸다.

 노루는 좋은 사냥감으로, 두 마리를 잡아가면 좋은 벌이었으나 새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두고 귀가했다. 그런데도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새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면서도 날이 밝자 산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새끼노루는 여전히 어미를 돌보고 있었다. 가끔 휘청거리는 것이 밤새 간호한 것 같았다. 새끼는 가끔 어미 곁은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올 때는 향기가 풍기는 이파리나 풀뿌리를 입에 물어다 어미의 몸에 비비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중천에 올랐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졸던 전독해는 새끼노루의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어미노루가 숨을 거둔 것이다.

“새끼가 정성을 다하는데도 어미가 죽었구나.”

숨이 끊어져 움직이지 않는 어미노루의 몸에 머리를 비비며 신음하는 새끼를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새끼가 “털썩” 쓰러졌다. 놀란 전독해가 계곡의 물을 퍼다 입에 흘러 넣자 겨우 눈을 뜨고 일어더니 죽은 어미의 몸에 코를 대고 비벼댔다.

전독해가 어미노루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돌아오는데, 어둠에 묻힌 산속에서 새끼노루의 신음소리가 애달프게 들렸다.

잠자리에 든 후에도 그 비명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잠들기 어려웠다. 날이 밝자마자 산으로 달려갔더니, 새끼노루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다가와 전독해의 허벅지에 머리를 비빈다. 전독해가 새끼를 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데, 갑자기 눈앞에 부모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시던 얼굴이었다.

“나는 노루만도 못하다.”

문뜩 후회하는 마음이 들어 집으로 달려가 마당에 꿇어앉으며 소리쳤다.

“아버님 어머님 그 동안의 불효를 용서해주세요.”

그 동안의 불효를 빌며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는 부모가 싫다는 일은 하지 않고 글공부에 정진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학문이 높다는 스승님을 찾아다니며 십년도 넘게 면학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글을 배우겠다는 학동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나중에는 독해의 학문이 뛰어난다는 소문이 퍼져, 나라에서 벼슬까지 내렸다. 그러나 독해는 벼슬길에 나가는 일 없이 글을 읽으며 지냈다.

“독해야말로 진정한 효자다.”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고 공부하여 부모를 기쁘게 해드린 것은 물론 마을의 명예까지 높인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효자라며 입을 모아 칭송했다. 그때마다 전독해는 얼굴을 붉히며

“노루의 덕택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알게 해준 노루가 저의 스승입니다.”

노루가 부모의 사랑을 알게 해주었다며 노루가 묻힌 산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 산을 부모산으로 불렀고, 부모산 자락에서 공부하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