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부모산과 우설신’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남쪽에서는 세모로 보이고 북쪽에서는 쌍봉으로 보이는 산에 ‘우설’이라는 신이 살고 있었다.

비바람을 마음대로 부리는 신으로 구름을 타고 천하를 유람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에는 지리산에 갈까하는데, 같이 가겠나.”
백두산에 다녀오는 길에 계룡산에 들려 도술을 닦고 돌아왔다면서, 또 유람 길에 오르겠다며 번개신의 뜻을 물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어도 가족 하나 없었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할아버지 왜 이제야 오시는 거예요.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하루 이틀만 외출했다 돌아와도 다른 신들의 가족들은 야단법석을 떨며 환영한다.

“가족이 있는 신들이 부럽다.”

먼 곳에 다녀와도 반가워해주거나 아무리 오랫동안 집을 비워도 싫은 소리를 하는 가족이 없는 우설로서는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이루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이 없어 외롭기는 하지만 홀가분하다며 천하의 유람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때, 산자락에 ‘연목’이라는 인간이 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든 부모가 좋아하실까 싫어하실까부터 생각하는 효자였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양지 바른 곳에 묘를 쓰고 매일 같이 찾아다니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했다.

묘를 찾아갈 때마다 준비한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한 다음에 부모님을 그리는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연목이 부모를 그리는 마음이 애절한 만큼 노랫가락도 애절하여, 노랫가락이 산으로 퍼져나가면 산속의 새들이 덩달아 노래하고 동물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해였다.

가뭄으로 전답의 작물이 메말라, 묘역의 풀들도 말라비틀어졌다. 나날이 말라가는 묘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연목이 산 중턱에 제단을 차리고 절을 하면서 

“부모님의 산소가 메마르니 저의 가슴이 먼저 타들어 갑니다.
시원한 비를 내려 땅을 적시고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주세요.”

간절히 비를 빌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이 큰 만큼 노랫가락도 애절했다. 그 노랫가락이 숲속에 퍼지자,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새들이 모여 노래하고 동물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밤이 되고 날이 샜는데도 산속에는 애달픈 노랫가락이 가득했다.   

“누가 이렇게 애달픈 노랫가락으로 마음을 흔드는고.”

마침 집에서 쉬고 있던 우설이 애절한 노랫가락의 감흥을 억제하지 못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저절로 제단이 차려진 곳으로 걸음 했다. 연목은 우설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술잔에 술을 따르고 노래하며 춤추었다.  

“참으로 대단한 효심이로다. 저래서 자식이 필요한 모양이다.”
연목의 노래를 들으며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에 감동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우설이 왼 손을 쭉 뻗어 제단의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에 댄 술잔의 술을 “휙”하고 하늘에 뿌렸다.

우설이 뿌린 술은 하늘로 솟아오르며 흩어지더니 사방으로 퍼지며 떨어졌다. 그러더니 어찌 된 일인가? 술방울이 떨어진 곳마다 물이 넘실대는 웅덩이가 생긴다.

“와, 물이다!”

곳곳에 물이 넘실대는 웅덩이를 본 연목이 소리쳤다. 연복이 감동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 사이에 웅덩이의 물이 “좔좔좔”시원한 소리까지 내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물소리를 들은 연목은 우설신에게 감사하는 것도 잊고, 부모의 묘역으로  달려가, 파릇파릇 살아나는 풀들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너의 효심에 강동했느니라.”

그런 연목을 유심히 바라보던 우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 우설은 비바람을 조절하여 풍년이 들게 해주었고, 연목은 마을 사람들과 상의하여 우설을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냈다.

주민들은 연목의 효심 때문에 가뭄과 장마를 걱정하지 않는다며, 우설이 들어간 산을 부모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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