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몇 평 안 되는 헐벗은 땅을 자신의 의지와 노고로 작은 천국으로 바꾸어 놓는다.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채소, 과일, 그리고 그것들의 색과 향기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내 나이 서른둘이나 셋쯤이었고, 아버지는 무려 육십이 넘은 때였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다 늙어빠진 아버지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정원 때문이었을까?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다는 아버지의 정원은 내가 지금껏 본 세상의 어떤 지상낙원 보다 눈부셨다.

소년처럼, 소녀처럼, 단아한 몸매의 옛날 옷을 입은 채 손에는 방금 전 강가에서 꺾어 온 듯한 갯버들을 수줍은 듯 들고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예쁘고, 멋있어 보여서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심장의 떨림을 다 느낄 정도였다.

정원뿐만 아니라 채소를 기르는 즐거움과 놀라움에 대해 얘기하는 아버지의 일기는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었다.

“그저께 마당 한 켠에 감자를 심었다. 작두콩도, 상추도, 호박도…, 갖가지 모종을 심고 여러 씨앗들을 뿌렸다. 듬성듬성 진달래가 핀 산자락 아래 한옥의 텃밭이 마침내 제 본래 모습을 갖춘 듯하다. 면도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산처럼 말끔하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텃밭은 참 썰렁했다.

지난해 가을 파전을 실컷 부쳐 먹고, 한 고랑이나 남겨둔 쪽파는 겨울 찬바람에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햇볕도, 공기도, 그 감촉과 냄새가 달라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마당에는 봄이 가득 들어차고 있다.

찬 겨울을 견뎌낸 쪽파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 다시 파전을 해먹을 만하고, 우엉 잎사귀도 벌써 아기 얼굴만큼이나 크다. 봄이 되니 마당을 가꾸는 이웃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

김선생님, 신선생님, 백선생님, 바오로님, 베드로님, 젊은 처녀들인 경숙님과 선혜님… 이제 반가운 얼굴들을 함께 보네. ‘벌써 예쁘게도 손질해놨네요!’, ‘딸기는 잘 되고 있어요?’, 안부 인사에, 세상 이야기가 이어진다.

꽃이 저버린 매화나무 아래 둘러앉아 막걸리가 돌고, 또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안주로 삼는다. 겨울을 이겨내고 눈을 틔운 감자, 돌덩이 같이 딱딱하던 옥수수 알맹이에서 연초록 잎사귀가 나오는 신비함, 그 속에서 느껴지는 끈질긴 생명과 그 생명의 힘, 의지를 서로들 공감한다. 작은 공간 하나를 가꿔 봐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난다.

각종 허브는 물론 청양고추와 호박, 오이에 로메인, 비트, 루콜라까지 갖가지 동서양의 채소가 가득한 작은 정원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손에 호미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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