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서 살리라 ’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세종시는 지난 2012년 탄생했지만 연기군과 청원군, 공주시 등 그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관심을 갖고 오랜 전통과 문화 유산은 자칫 외면하고 소홀하기 싶다.

오랜동안 우리의 역사를 연구해온 권오엽 명예교수를 통해 세종시의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소개코자 한다.

□전설의 문제

유성에서 세종시로 들어오는 오른쪽 차창으로 보이는 것이 전월산과 원수산이다.

260미터와 251미터로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돌출된 산세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충동에 이끌려 올라서 금강을 뒤로하니, 아련히 보이는 국사봉 좌우로 뻗어 내리는 산맥이 시가지를 감싸 안는다. 그래서 세종시를 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600여 년 전에 망국을 슬퍼하며 낙향하던 고려의 충신 임난수가 이곳을 은거지로 정하고, 조선의 선비들이 안온하다며 찾아든 이유도 알만했다. 산을 오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가팔라 숨이 차면 힘찬 인생 같아 활기가 솟고 완만하면 여유롭다. 그런데 원수산과 전월산을 올랐다 내려온 기분은 개운치 않았다. 길이 험하거나 풍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곳곳에 세워진 전설 판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방축천에서 원수산과 전월산을 넘어 금강 쪽으로 가거나, 금강 쪽에서 두 산을 넘어 방축천으로 나가면 몇 개의 입간판에 기록된 전설을 만나게 된다. 단정하고 간결하여 읽어보게 되는데, 읽은 뒷맛이 좋지 않다.

내용이 틀렸다거나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어쩐지 네가 올라 걷고 있는 두 산의 역사를 고려 말로 한계지운 것 같고, 그 산자락에 살았던 주민들이 화합보다는 질시와 분열에 능했던 것으로 여길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전설이란 생활 속에서 생겨났다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진다. 그러지 않고 남아서 전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기록해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원래 같은 전설이라 해도 이야기하는 사람, 듣고 전하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특히 기록하는 사람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좋은 내용이 되기도 하고 나쁜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월산과 원수산의 전설은,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전설 판에 기록된 것을 곰곰이 살펴보면, 두 산은 물론 두 산을 둘러싼 지역에 호감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이 기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원수산에는 고려 말에, 원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도망친 세력을 토벌하기 위한 원나라 군사들이 주둔한 사실을 기념하여 원수산으로 불렀다는 유래를 기록한 비가 있다. 원군이 주둔한 사실이 크게 자랑스러웠던지, 그때까지 사용되던 산의 이름도 기록하지 않았다.    

전월산에는 고려의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는 상려암, 금강에서 100년을  지낸 이무기가  승천하려 했다는 용샘, 가지가 바람에 날리면 건너 마을 처녀들이 바람난다는 버드나무 전설, 착한 며느리가 바위로 변했다는 바위의 전설을 기록한 간판들이 있다.

전설의 시대가 분명하지 않은데, 망해서 없어진 고려를 그리워하다 바위로 변했다는 상려암과 산자락에 있는 숭모각의 유래는 고려인의 충정을 기리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곳의 기록들만 읽다보면 원수산과 전월산은 물론 그 산자락의 역사와 전통도 고려 말을 한계로 하는 것 같다.

마치 그 이전에는 아무런 문명과 문화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고려 말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두 산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원수산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그 이름에 어울리는 전설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종시의 산하를 걷다보면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상서로운 기운을 느낀다.

교통신호에 걸리는 일 없이 몇 시간이고 걸으며 땅의 기운을 받을 수 있고, 상상의 나래를 펄럭이며 하늘도 날 수 있다. 그것은 모두를 이롭게 하는 홍익의 기운을 체험하는 일이다.

홍익의 기운이 이곳 천지에 서렸다 민족의 미래를 여는 행복도시를 나타났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운은 이곳에 사는 우리만이 아니라 가끔 들리거나 지나가는 자들에게도 미친다 한다. 그것은 이곳 산하에 깃든 신화나 전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194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산성초, 칠보중, 군산고, 서울교육대학을 거쳐, 서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일본에 사는 동포들에게 우리문화를 전하는 일을 하던 중에, 공부를 더 해야 된다는 생각에, 북해도대학과 동경대학에서 한국과 일본의 신화를 연구했다.

 충남대에서 광개토대왕의 천하를 연구하며 독도가 왜 우리 땅인가를, 일본 고문서를 통해서 확인하는 작업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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