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와 성녀

그녀는 1412년 프랑스 동부의 동래미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배운 것 없이 부모의 양떼를 몰고 다니며 성장한 소녀가 겨우 19살 때 종교 재판정에 선다.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녀라는 판결을 받은 그녀는 이단. 배교자(背敎者). 우상숭배자라는 글씨가 쓰여진 종이 모자를 쓴 채 화형을 당한다.

유럽의 백년전쟁 말기, 프랑스에서는 샤를 6세가 왕위로 오르자 통치권이 왕족에게로 넘어가면서 오를레앙가(家)와 부르고뉴가(家)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되풀이 되면서 무력 할대로 무력해진 상태였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영국의 헨리 5세는 군대를 이끌고 침범하여 아쟁쿠르에서 승리하고, 1420년 트루아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프랑스는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당하면서 군사들의 사기와 국민들의 애국심마저 완전히 땅에 떨어져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을 때다.

이때 기적같이 나타난 13세의 성녀(聖女)가 있었는데, 그녀는 어느 날,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스스로 외치면서 전쟁터에서는 최선두에 서서 싸웠고 또 싸울 때 마다 크게 승리를 거둬 오늘의 프랑스를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든 구국소녀 잔 다르크의 최후를 말한 것이다.

프랑스인에겐 구국의 영웅이요 영국군에겐 악마일 수밖에 없는 이 소녀가 결국은 적국인 영국과 한패가 되어 조국을 향하여 칼을 들이대던 더럽고 추한 프랑스의 귀족집단 부르고뉴가(家)에게 붙들려 영국군에게 인도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의하여 이처럼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잔 다르크가 화형당한 이후의 전세는 프랑스군에 유리하게 전개 되었고 영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성(城)과 도시(都市)를 하나씩 함락 시키고 1450년에는 노르망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1452년에는 보르도에서 영국군을 퇴각시킴으로써 드디어 백년 전쟁도 끝나게 되었다.

잔 다르크의 은혜를 크게 입은 프랑스의 왕 샤를 7세는 백년전쟁이 끝나 자 마자 잔 다르크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종교재판의 재심을 청구하였고, 그 결과 그녀는 마녀가 된지 20여년 만에 다시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녀의 지위는 역사가 흐르면서 다시 한 번  반전되어 1920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서 정식으로 성녀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야말로 극에서 극으로 반전을 거듭한 것이다.

한 사람의 같은 행위가 어떤 경우에는 마녀로 낙인이 찍히고 어떤 경우에는 성녀가 된다. 왜 이렇게 되는가?
판단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판단이 잘못되는 경우도 참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나타난 현실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판단이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한 사람을 폐인(廢人)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뿐이랴 나라의 근간(根幹)을 뿌리 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요즘 나라가 혼란스럽다 못해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북한의 핵, 중국의 사드에 대한 보복, 일본의 독도 망언 등 어느 한곳 조용할 날이 없다. 국민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그저 자기들 유리한데로 쥐락펴락 만하고 있으니 이 나라 꼴이 어찌되겠는가?

화형대보다 더 잔인한 탄핵 심판대에 올려놓고 선두에서 흔들어 대는 당신들이야말로 정녕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집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가 한심스러운 짓거리를 저질러 놨다해서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라, 언론과 이적단체들이 개지랄 떠는 수작에 부화뇌동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기에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말일 것이다.

여보시오! 벗님네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 더러운 놈들이! 마녀 주제에 성녀처럼 행세를 하고 다니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불쌍한 국민들만 현혹(眩惑)되게 말이요.

아무쪼록 구정 명절을 맞이하여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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