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만 하는 북쪽나라 지도자는 우리는 끄덕없다, 라고 하면서 여전히 폭탄만 흔들어대고 있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남쪽나라 지도자와 힘센 이웃나라 지도자는 폭탄을 그렇게 흔들면 국물도 없다고,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북쪽나라가 망할 거라고 하면서 남아도는 쌀 창고 문단속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쪽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30만명이 굶어죽었다.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노인이었다. 물론 그때 순희 외할아버지와 어린 철수도 굶어죽었다. 옥수수죽도 못 먹고 배고파 죽은 외할아버지와 철수는 퉁퉁 부은 누런 얼굴에 눈도 제대로 못 감았다.

도스프예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은 처참하면서도 웅혼한 기록이다.

도스프예스키는 이렇게 적고 있어. “출신 좋은 사람이 갑자기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특권을 상실하고 민중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는 변화가 주어졌을 때에만 완벽히 지각할 수 있다.” 무엇을 깨닫는 단 말인가? 삶에 대하여, 고통에 대하여. 지식인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인의 모습으로 우호적으로 지낼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다만 더불어 생활하는 길이 유일하다는 것이야.

“나는 책이나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것을 확신했다”고 도스프예스키는 썼어. 다름 아닌 시베리아 유형지라는 현실. 도스프예스키는 날카로운 통찰과 비범한 유머로 죽음의 집의 일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 봤어.

작은 새나 염소에 대한 죄수들의 감정들 또는 돌멩이라도 몇 개 모아 억지로 유희를 벌이는 장면에서 나는 삶의 엄숙함을 읽어. 그 유형지에 축구공이 있었더라면 도스프예스키는 아마 당장 공을 찼을 것이다. 세상에서 몸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는 반목과 불신, 언쟁과 주먹다짐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팔만대장경이었어.

그래서 어떻게 하였던가.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나는 욕설과 악취가 뒤섞인 곳으로 스며들어갔지. 도스프예스키가 말한 책이나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겪어내는 삶을.

나는 고전적인 진실, 보수적인 지식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어떤 혁명적인 변화보다 오랫동안 지속하는 비극의 과정을 더 신용해. 그래서 어떤 일이나 십진법(十進法) 이상의 단위로 지속하는 것만이 극적인 변혁이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장돌뱅이보다 훨씬 장엄한 일이라는 것을 주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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