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여 내 생각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그러면, 내가 만들어낼 조각품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내 손에 들려있는 정을 부단히 움직이게 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수록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은 왜 일까? 나를 찾아온 이 누구인가?
그 또한 ‘나’다. 비로소 저만치 ‘나’를 보기 시작한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모호한 상태, 아무리 노력해도 후련하게 해결 안 되는 좌절과 고통의 시간, 이러한 상황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 인생일 터.

이상(李霜)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문기(文氣)와 신기(神氣)로 설명했어! 조선말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이 기운이 모두 곤두박질쳤어! 일제로 큰 타격을 입고 정신 못 차린 사이에 미국 문화가 갑자기 들이닥쳐 버렸어!

사회문화의 천박함은 경제나 돈과는 관련이 없어! 한 사회의 가치관 문제야! 전통적으로 결혼과 장례, 제사는 개인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의례인데 한국은 결혼문화, 장례문화가 엉망이야!

전통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유교적 가치관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관이 나오지 않았어! 정치가 바뀌면 다 바뀐다고 하는데, 정치에서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바뀌어야 해! 패거리나 권위주의가 문제야!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봄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지.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어.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차라리 겨울이, 죽어있을 때가 따뜻했다는 말인가?

봄비로 잠든 참사, 4.19민주혁명, 5.16쿠데타, 5.18광주 민주항쟁을 맞이해야 했어. 수많은 비장한, 그리고 처참한 기념일들의 행렬은 우리의 봄이 아직은 결코 따스할 수 없다는 진실을 잔인하게 시위했어.

우리는 온전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고, 혹독한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으며, 그래서 희생자들을 위한 해원도 하지 못했어. 과거와의 화해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던’ 지난겨울이 더 따뜻하기까지 느껴진다.

이 처참한 기념일들이 상징하는 황무지를 딛고 일어서서 다시 꽃을 피우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뼛속까지 바꾸는 혁명이다. 흑백의 분단논리, 일방적 감시와 통제, 대립과 분열을 완전히 털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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