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한 줄이 전전긍긍이었으므로 내 글 들을 그 흔적들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인형이 아닌, 진짜 토끼가 돼 달빛 아래에서 산책하고 싶어 하는 인형, 작은 토끼의 모험을 담은 그림책이 되고 싶어. 작은 토끼는 달빛 아래 정원에서 진짜토끼들을 만나지만 무시당하고 말았어.

내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눈물을 떨어뜨리는 작은 토끼에게 여우가 다가와 “인형인 게 뭐 어때서? 나도 하나 갖고 싶은걸” 이라고 위로했어. 인간의 위선과 가면이 벗겨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곡예를 생생하게 그려냈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의 가감 없는 표현이다. 나의 얼굴, 몸가짐, 내가 처한 환경과 운명은 내 생각 그대로의 표현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내 생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 미래는 마치 조각가 앞에 놓여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최초의 커다란 돌덩이다.

인간은 지상의 최고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과 함께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상이란 것도 안다.

곰곰 생각해보자. 완생인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이루지 못한 미완성 부분이 있을 터. 만일 이 세상 미생들의 꿈인 완생에 이른다면 삶이 행복할까. 이미 완성된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불가능한 것을 꿈꾸지 않고선 가능한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이 아흔은 되어야 철이 든다고 하는데, 이왕 세상에 나온 바에야 철이라도 들고 떠나야 할 것 아닌가! 나는 힘센 어른도! 권력을 가진 이도! 부를 가진 이도 아니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가장 작고 미약한 인물이야! 완생에 얽매이지 말자! 완생을 부러워하지 말자! 차라리 미생인 오늘이, 나의 미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나는 형태가 없는 돌덩이와 같은 미래를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두 손에 정과 망치를 들고 마음속에 그려놓은 생각을 조각하기 위해, 쓸데없는 군더더기 돌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정교하게 쪼아내기 시작한다.

나의 미래라는 조각품은 남들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을 때 빛이 날 것이다. 생각은 내 손에 쥐여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예술은 굉장히 자유로워.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며 거기에 담긴 자유를 동경하고 갈망해. 지금은 허락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허락될 자유를 미리 맛보는 거야. 그것 자체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나를 내세우는 것은 참 초라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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