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霜)과 그의 ‘날개’가 적어도 100년을 앞서 갔던 아방가르였음을 어찌 의심할 수 있는가!

누가 이상(李霜)을 의심하는가! 이상은 제국의 시민으로 웅크리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불안과, 권태와 무기력의 시대를 벗어나길 기원해주었어. 나는 그들의 믿음과 가치관을 사로잡는 대신에,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각자의 울타리를 쳐둘 권한을 주었어.

온전한 제 공간을 설정하고, 또 향유하는 일은 너무나 달콤한 법이야. 일단 그 매혹에 빠져들고 나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으며, 남들은 너무 조금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지.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어.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 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했어. 이상(李霜)에게 햇빛이란 단어를 볼 때 우리는 비슷한 감각을 공유해.

햇빛은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고 환하면서도 무서워. 햇빛은 평이한 삶 속 어떤 비밀스러운 순간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인생의 뜻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게 하는 물질이라고도 느껴.
이상(李霜)도 햇빛에 대해 지금의 우리들과 같은 감정, 정서를 가졌을까.

비, 바람, 눈, 안개, 또 뇌우(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내리는 비) 같은 날씨에 대해 어떤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었을까. 그에게 비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공포에 떨게 하는, 한밤중의 악몽처럼 격렬하게 퍼붓는 비였어. 비가 가진 감미로움이나 일상적인 느낌이 거의 없는 대홍수의 비였어.

그가 마담에게 보낸 편지에는 비와 바람, 추위로 몹시 쾌한 날씨라고 썼어. 비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며, 몸과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고, 마차를 타고 가는 데 장애가 된다고 강조했어. 비는 주로 우울한 기분이나 지독한 슬픔, 눈물과 연관돼 언급했어.

그런데 이상(李霜)에게 비는 감상의 대상이기도 했어. 비가 오는 광경을 보면 내게 비를 피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과, 바람이 불 때 따뜻한 침대 속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 자신의 인간적 비루함이 가라앉음을 느낀다고… 소극적인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했어.

비는 이 풍경들에 음울한 기품을 부여한다. 강에서 멀리 떨어진 제방 위에 어둠의 베일을 드리우며 비는 이따금 즐거운 거리두기 같은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인간 실존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다룬 이상(李霜)의 그런 허무주의에 매료되곤 했어.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시지프스처럼. 그렇다! 도취야말로 내가 사람들을 굴복시킨 매개였어.

인생은 한 편의 시야! 내 인생은 내가 작곡하고, 내가 작사하는 나의 노래야! 나만의 노랠 부르자! 그걸 위해 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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