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헐어내는 것 같은 아픔, 제3부- ‘철거편’

▲사랑의 일기 연수원은 아이들에게 학교 울타리가 아닌 또 하나의 열려있는 교육의 공간이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은 아이들에게 학교 울타리가 아닌 또 하나의 열려있는 교육의 공간이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꽃 피어나리

세종시에는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나 13년의 역사를 지닌 어린이 인성교육을 위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어 유일무이한 보물이 있다.

일기장 120여만 권에 이르러 미래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도 손색없는 보배 중에 보배를 담은,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하 연수원)이 있었으나 2016년 9월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 의해 쓰레기 취급을 당한 채 무참하게 철거·폐쇄된 가슴 아픈 시설이 그것이다.

25년의 역사의 비영리민간단체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가 불원천리 멀다 않고 지켜온 세종시만의 알토란같은 보배가 처참하게 격침을 당한 격이다.
이에 세종매일에서는 사랑의 일기 연수원의 창립, 활동에 이어 마지막 편인 제3부 철거편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요즘 학교에선 찾아 보기 힘든 넓은 운동장의 푸른 잔디위에서 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 학교에선 찾아 보기 힘든 넓은 운동장의 푸른 잔디위에서 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탐욕에 빠진 사람은 일기 절대 안 써… 어릴 때부터 일기 쓰기를
1995년 언양초등학교 황미자 어린이 ‘국무총리상’, 2000년 명동초등학교 ‘대통령상’ 수상, 2015년 아름초등학교 박태원 어린이 ‘환경부 장관상’ 등 세종시는 연기군 시절부터 일기 쓰기와 오랜 인연이 가졌고 그것은 ‘사랑의 일기 연수원’으로 이어졌다.

“세종시는 일기 쓰기를 통한 인성교육 모범 도시였다. 세계를 이끌고 갈 미래 지도자로 자라날 참 좋은 영양소가 일기이고 세종시에 꽃피던 그 일기의 샘물격인 연수원이 철거된 것이다. 빨리 되살려야 마땅하다”

인추협 고진광 대표가 세종시와의 오랜 인연을 언급하며 내뱉은 첫마디다.
첫눈이 나부끼는 가운데 음산한 현장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은 굉음을 울리며 먼지를 뿜고 있고 도로 지반을 다지는 건설장비들이 오가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는 고 대표에게 가볍게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한마디 하자했다.

“일기쓰기 운동이 죽으면 세상이 절단난다.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뒤집어지고, 배려와 양보는 탐욕으로 바뀌고, 양심은 더러워지고 인간성은 동물성으로 후퇴한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만 해도 대통령이나 최순실이 일기를 썼다면 내가 이래도 되는가 하고 매일 돌아보며 착한 이웃 어린이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이 됐을 건데 지금 대통령이 전부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하고 있지 않나?”고 말한다.

고진광 대표는 일기쓰기의 생활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어린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일기는 기도와 같다. 거짓말만 하고 명예욕·재물욕 ·권력욕 등 갖가지 욕망과 탐욕에 빠지면 절대 일기를 안 쓴다. 어릴 때 좋은 습관을 새겨주는 것이 진정한 미래 대한민국 최고의 재산이다”

■일기를 짓밟으면 동물성·식물성이냐… 답은 ‘광물성’
고 대표는 이번 철거에 대해 LH세종시건설본부의 무식이요 무자비이며 사랑과 눈물이라고는 병아리눈곱 만치도 없는 무지막지한 밀어붙이기 철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식물성을 넘어 광물성에 가까운 무관심, 일기에 대한 무개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지금(11월 28일) 철거를 마치고 폐기물 처리업체가 왔다. 포크레인으로 폐기물을 분류하며 트럭에 싣는 과정에서 일기가 적힌 1000여권과 아직 사용하지 않은 일기장도 수백권이 쏟아져 나왔다. 소장이 초등학생을 둔 아빠였는지 그걸 열심히 챙겨줬다”고 한숨을 쉬었다.

■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 원안·수정안 등 혼돈의 시대
그의 탄식속에 2003년 출발한 행정수도특별법이 2004년 위헌판결, 2005년 행복도시로 바뀌며 원안과 수정안의 심각한 대치가 이어졌다는 것부터 말머리를 뗐다.

“2005년까지 임차료를 입금하고 원안사수를 위한 세종시민투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존립자체가 위태한 것도 아니므로 평화로이 운영할 수 있었다. 인추협과 계약한 임대당사자는 ‘충남교육청’인데 행복도시가 된다 안 된다 설왕설래하는 가운데 2012년 세종시가 출범해 세종시에도 교육청이 생겼다. 그런 과정속에 임대료를 받을 주체 즉 임대인의 정체성도 혼란스러웠다. 이 기간이 2006년부터 철거할 때까지니까 연 1200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했다면 계산상 10년 잡고 1억 2천만 원의 임대료 미납이 발생한 건 맞다”고 설명한다.

이 점은 고 대표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것에 있다고 한다.

고 대표에 따르면 엉뚱하게도 부당이득금(5억 2천만원)을 토해 내라는 공문이 왔다는 것.
10여 년을 가만히 있다가 지난해에 날라 온게 ‘남의 다리 긁듯’ 하는 ‘부당이득금’을 내라니 오랜 세월 임차료를 안 줬으며 달라고도 하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한다.

고 대표는 “인추협이 공짜로 대체 부지를 달라고 할 생각은 아니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 2부편) 앞서 언급했었지만 대기업에서 사랑의 일기장 600만권을 제작·후원해 준다는 제의가 있었다. 받아주면 추가로 준다는 후원금도 사양했었다. 다만 LH나 행복청에서 특별 분양이나 도시계획 설계에서 그대로 두고 재임대나 분양협의를 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충남교육청이 ‘임대인’인데 정작 ‘충남도청’이 비우라하고… 중구난방 서류
LH, 2년의 유예기간이 존재했음에도 강제철거 단행 “이런 무법천지가 어디있나”

올해 8월 22일, 대전지방법원 집달관이 연수원을 떠나라는 ‘부동산 인도 강제집행 예고장’을 붙였다.

그 내용은 오는 ‘2018년 9월 5일’까지 자진해 이행하라는 것인데 놀랍게도 임대인도 아닌 ‘충청남도’가 방을 빼라는 소장을 보내왔다.

그는 “2년 후에 비우라하고, 왜 충남도에서 나가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또 5억여 원의 부당이득금을 LH에 지급하라는 데 완전히 딴 나라 말이다. 한두 가지가 꼬인게 아니다”고 말했다.

짐작컨대 연기군이었으니까 충남도가 소를 냈는가 싶지만 충남교육청은 여전히 실존하고 있다.
대전지방법원은 2년의 유예기간을 줬고 이번에 날아온 문서에서 2016년 부당이득금은 9월 30일까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견을 제출하라는 내용이 왔다는 것.

고 대표는 강한 소리로 강제철거의 부당성을 외쳤다
“법원에 따르면 철거나 포크레인 등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2년 후에나 닥칠 일 아닌가? 9월 30일까지 부당이득금을 지급하라는 말 같지도 않은 문서에 답변을 준비하던 중 아닌 밤중 홍두깨로 9월 28일 철거팀이 쳐들어 와서 건물을 마구 헐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기장들은 똥자루 치우듯 대충 추려 컨테이너박스에 집어넣으면서 강제철거가 시작됐다. 아니 이게 법치국가 맞나. 공기업의 폭거도 이런 폭거가 없다”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진광 대표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일기장 등을 옮기고 있다
▲고진광 대표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일기장 등을 옮기고 있다

■파지 취급속에 포크레인으로 파헤쳐… “LH 죄악은 역사가 알고 후세에 전해질 것”
결국 누구에게 하소연할 시간도 없이 건물은 헐리고 일기장은 그저 파지취급 당하며 땅에 나뒹글었다.

“일기 120만 권을 죽는 날까지, 대대로 영구 보관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인추협이라고 하는 비영리 단체가 추구한 이상이며 심혈을  기울여 활동한 결실이다. 머리가 깨지고 팔 다리 한 쪽이 잘려나갈지언정 120만 어린이들의 일기를 내 목숨보다 더 잘 지켜야 하는데 소중한 일기가 짐짝 취급 당하며 포로로 잡혀가는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구 찢어지고 버려져 비를 맞고 땅속에 묻히는 것을 보며 쥬라기 공원의 공룡처럼 포크레인이 무섭고 떨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굳은 각오는 여전했다.
“일기 연수원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정기가 사라질 대한민국이 아니고 내가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린이들 120만 명의 정기가 결단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망가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LH에 대해 “고사리같이 어린 손, 어린 초등학생들의 일기를 불법으로 철거하고 찢고 땅에 묻은 죄는 ‘유관순 열사’를 고문한 일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용서는 내가 하고 안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대한민국 정신이, 무궁한 미래의 민족정신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LH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맹이 하나, 심지어는 개집, 돼지우리 어느 것 하나도 보상하지 않고 땅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가 무슨 산적집단이냐? 세월이 가면 데이터베이스에 든 일기장과 추려지는 현물을 조사해 실태 파악을 해야 하는데 120만 권이니 거의 불가능하다. 말이 120만권이지 누구 일기 몇 권이 소실됐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LH 죄악은 역사가 알고 후세에 전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처참히 철거돼 각종 자료들도 쓰레기 더미처럼 묻혀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처참히 철거돼 각종 자료들도 쓰레기 더미처럼 묻혀있다.

■120만명 어린이가 공노(共怒)할 정신·교육적 살인행위 저지른 것
그는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불법과 부당함을 하나하나 적시해갔다.

“먼저 2018년 9월이라고 한 판결을 무시하고 예고 없이 철거한 것, 둘째 9월 30일까지 답변기간을 정한 공문서를 보내놓고 답변 기한 이틀 전에 연락도 없이 연수원을 철거한 점, 마지막으로 시설물, 전시물, 일기장 등과 세종시민투쟁기록관에 보관됐던 세종시 원안사수를 위한 생생한 역사 기록물 등을 마구잡이로 쓸어 내 포크레인으로 부수고 유실시켜 그 피해 정도를 전혀 알수 없다. 이는 120만명 어린이가 공노(共怒)할 정신·교육적 살인행위를 저지른 것과 다름없다”

■세종시장, 세종시의회의장, 세종시교육감 그리고 행복청장과 LH사장에게 말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 오로지 LH만의 잘못이었을까?

고 대표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고른다.
“잘라 말하면 첫째는 세종시장이다. 초대 행복청장이라 내용을 잘 알텐데 이번 일에 너무 무심하다. 시정을 잘 알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성이나 문화·교육·효 개념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시에서 세종시 기록물을 수집한다고 떠드는데 10년이 넘은 지금 참 같잖은 것은 우리 연수원에는 3300여점의 세종기록유물이 보존돼 있었다. 그것이 완전히 짓밟혔다. 24점 보험평가액만(국립민속물관 자체평가보험증서 의거) 1억2천4백만 원이다. 3300점이라면 수천 억이 넘을지 모른다. 이게 쓰레기더미에 묻혔는데 이것은 나몰라라 하고 세종시 기록물 수집한다고 나서고 있다. 정말 한심하다”

그는 교육감과 행복청장에게도 할 말이 많단다.
“일기가 귀한 줄 안다면 교육감이 관심을 가져야지 이렇게 무감각한 사람이  애들을 가르치고 이끌수 있나. 그가 초등학생들 일기장 120만권이 의미를 알지 모르겠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행복청장이다. 내가 다섯 번 면담신청에 다섯 번 거부당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수모이지만 그건 내 입장이라 치고, 바쁜 것 좋지만 연수원은 행복청의 아들딸과 같다. 언제까지 버려둘지 누구책임인지 물으면 이건 행복청이 LH를 관리하지 않아서 온 결과”라고 말한다.

세종시의회도 조례 제정을 통해 세종시 기록물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을 기대했지만 그들은 방관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고진광 대표가 가장 할말 많은 당사자는 철거의 주역인 LH일 것.
“무식이다. 중장비가 몰려와 파헤치고 허물어뜨리는 것이 사람이 죽이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것을 모른다. 세종본부장이나, 본사 아니면 국토부에 찾아가 이대로 내버리자는 거냐고 물어봐야 겠다”고 말한다.

고 대표는 “(LH의 행위가) 정말 고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설마 본부장이, 본사 사장이 ‘일기 나부랭이’ 그냥 밀어내라고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라며 “코끼리 뒷걸음질에 개미 한 마리나 열 마리가 죽어도 모르는 것 같은 상황이다. LH는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제자리를 찾아 시민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제자리를 찾아 시민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다.

■세종 교육의 메카가 되고 세종 관광의 허브가 되는 날까지
마지막으로 유관 기관과 세종매일 독자 및 국민여러분께 한 말씀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상우 LH사장님, 이충재 행복청장님, 이춘희 세종시장님, 고준일 세종시의회의장님, 최교진 세종시교육감님 그리고 국민여러분.
세종시 개발도 좋고 행복도시도 다 좋고 중요하다. 이 세종시에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존재하고 120만명 전국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일기가 있다. 이 일기는 우리나라와 세종시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의 인성교육 최고의 보양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분들게 간곡히 부탁한다. 인추협에서 할 도리를 다하고 시민들의 모금운동도 전개해 사라진 터전을 새로 세워 새 둥지를 틀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세계에 자랑할 미래의 유산이라면 한글이지만 그 뒤를 바짝 좇는 것이 바로 일기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이들의 눈같이 희고 깨끗한 동심이 빼곡히 들어찬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거듭나, 세종 교육의 메카, 세종 관광의 허브가 되며 미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이 되는 날까지..  세종시민여러분이 응원해 주길 눈물로 호소한다”

고진광 대표는 이어 아프지만 기쁨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빠뜨린 말 한마디... 참 감사드릴 말씀이 있다. 인추협은 이달 초 재심을 받는다. 이번에는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소송비용에 쓰라면서 긴급 회의로 모인 ‘사랑의 일기 수호시민대책회’ 회원들이 거금 1천176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줬다. 이런 사정을 알고 순수한 시민들이 낸 성금이다. 용기를 내겠다. 앞으로 끊임없이 달려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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