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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일기 연수원’ 미래세종의 종묘장(種苗場)어린이가 성장하기 좋은 도시 제2부-활동편
이종화 기자  |  netco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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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5  1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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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주 스님이 사랑의 일기 연수원을 방문해 방명록에 인간성 회복을 강조하는 글을 남겼다.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미래냐’ 의 정답… 일기쓰기
세종시에는 13년의 역사를 지닌 어린이 인성교육을 위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보물이 존재했었다.

일기장 120여만 건의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도 손색없는 보배를 담은, 바로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하 연수원)’이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난 9월 28일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에 의해 ‘강제집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하게 철거·폐쇄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오랜 기간 연수원을 성원해 온 뜻있는 이들은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이하 인추협, 대표 고진광)’가 불원천리 멀다 않고 지켜온 세종시만의 알토란같은 보배가 처참하게 사라졌다고 한탄한다.

추운 겨울 바람에 몸과 마음이 더욱 움쯔려들지만 인고의 시기를 지나면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이런 기대와 희망속에 세종매일은 제1부 ‘연수원의 탄생’에 이어 제2부 ‘연수원 활동’을 소개하코자 한다.[편집자주]

■1,200,000명 어린이들의 일기장이 있는 곳… LH는 점령군처럼 쳐들어왔다.
현대판 세종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사랑의 일기 연수원 폐쇄를 통곡한다’ 제1부-창립편에서 강제철거 과정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의 근원을  ‘어린이의 일기’에서 찾는다면 120여만명의 어린이 일기장은 상당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강제집행과정에선 철저히 ‘폐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고진광 대표는 “일기를 아이들 다루듯 소중하게 제대로 잘 포장해서 안전하게 옮겨야 했었다. 이렇게 중요한 120만권의 일기가 도륙을 당한 격”이라며 “폐기물 치우듯 버려지니 이게 곧 우리 스스로 생명을 경시하는 것 같아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일기장은 권당 2개월분 60쪽 짜리로 120여만권, 일기장 권수와 똑같은 학생 1,200,000명의 어린이들이 쓴 개개인의 인격이 그저 쓰레게처럼 버려지고 짓밟혔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노태우 정부말기 였다.
그 비통함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연수원의 활동기를 살펴봤다.

고 대표는 “인추협 발기를 준비한 그때는 노태우 정부시기 였다.  안착은 노태우 정부 말기와 김영삼 문민정부 초기하고 맞물리는데 뜻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그동안 막혔던 구멍이 뚫렸다”고 말한다.

인추협에 따르면 우선 흔한 ‘일기’라는 보통명사에 관용구를 붙여 ‘사랑의’ 일기 라 하고 싶어 제출한 특허문제가 김영삼 대통령이 특허청에 직접지시로 등록이 된 것라고 한다.

‘사랑의 일기’는 다른 일기와 달라서 민족성-절약-효행-생활-가족간의 유대가 글로 써 하나를 이뤄야 하고 엮이는 맞춤형 일기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해방과 6.25를 거치고 5.16으로 민주화 욕구가 뜨거웠지만, 우선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경제성장 또한 큰 관심인 터라 어린이들의 일기 인성교육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문민정부 출범시기에 김부성 초대 인추협 대표(가톨릭대 교수, 성모병원장)와 당시 사무총장였던 고 대표는 “바로 밥만 잘 먹어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인간성 ‘도야’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그 무엇을 찾아 행동에 나서야 한다” 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말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해인 1978년에 했던 말이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생각과 행동을 강조하며 국립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세우려 특별법을 통과시킨 바 있었다.

10.26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 7년이 지나고, 노태우 정부가 다시 5년을 집권해 총 12년을 지나는 동안 민주화에 대한 열망속에 어느 덧 문민정부가 들어선다.

인추협이 설립된 것은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2년 전 1991년... 그해는 6.29로 당선된 노태우 정권이 저물어 곧 다가오는 14대 대통령 선거판으로 나라가 들썩거렸을 때였다.

고 대표는 “세상이 달라져 잘먹는 세월이 온다 한들, 생각이 달라지고 의식이 더러운 구태를 벗지 않으면 잘살수록 더 먹으려 하고, 잘 살수록 더 크고 좋은 아파트를 가지려 하고, 좋은 옷, 비싼 차, 더 맛있는 음식에 세계여행 다닌다고 낭비할지 모른다. 또, 여유가 있으니 술에 찌들고 퇴폐 문화에 과거 조선시대처럼 부자는 첩 둘 셋을 들여도 되는 세상이라면 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인간성 회복’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말한다.

이에 정신적 지도자들을 모시고 일기쓰기 장려 실천운동에 들어선다.

   
 
   
 

■한국의 대표 지성인(知性人) 일기에 정성을 쏟아붓다… 초대 심사위원장 ‘미당 서정주 선생’
“사랑의 일기 연수원 탄생의 모체인 인추협에는 대한적십자사 고 이윤구 전 총재(인추협 6대 대표)를 비롯해 권성 전 대법관(7대 대표)이라든가, 생전의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조계종 송월주 스님 등 한국의 지성과 지도자들이 매월 꼬박꼬박 후원금을 들고 매년 찾아욌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에게 일기쓰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열정이 솟아오른 시기였다”고 말하는 고 대표에게 어떻게 120여만권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일기장이 보관하게 됐는지 물었다.

그는 “그걸 얘기하자면 좀 길다. 시작은 158명이 시작했다. 우리는 매년 10만~30만권씩 인쇄해 총 500여 만권의 특허 낸 일기장을 국내·외 각 초등학교에 무상으로 발송했다”며 “아이들이 두 달동안 일기를 쓰고 학교의 예선을 거쳐 시·도 심사 후 1998년도에는 총 5000여개 학교에서 158만명 어린이들 일기가 모였다”고 그 뜨거운 열기를 소개했다.

이런 일기들을 최종 심사위원들이 응모자 입회하에 공개심사를 진행했다.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장관상, 광역시도지사상, 교육감상 등 시상을 하고, 여기서도 상장을 받지 못한 2차 일기장들은 제본해서 돌려 보냈다. 입상한 최우수 일기장들만 모아 보관 전시한 것이 바로 120만여권의 일기장이다.

그 당시 유명 심사위원들은 누구였을까? 대부분 문인, 전직 교사, 작가와 교수 등으로 구성됐는데 전국 규모의 행사를 할 때 심사위원은 보통 100여명 정도다.
초대 심사위원장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었다. 서정주 시인은 소천하실때까지 지팡이를 짚고 꼭 오셨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선 본선에서 시상 대상자로 선정되면 부모와 같이 1박 2일간 시상이 개최되는 도시(전국순회행사)로 같이 오게 했단다. 반드시 부모가 동행해 ‘가족신문’ 형태의 공동 작품을 만들어야 최종 입상 대상자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송월주 스님(사진 가운데)이 사랑의 일기 연수원 교실에서 고진광 대표(사진 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상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성’을 지켜냈다.
시상식은 호암아트홀 같은 곳에서, 또 서울 소재 세종문화회관(3,800석)·장충체육관( 6,000석)·잠실체육관(14,000석), 부산 구덕체육관(6,000석), 대전 충무체육관(6,000석)등. 입추의 여지가 없이 어린이들과 일기로 가득찼다.

‘이런 활동을 위한 비용은 어디서 나왔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고 대표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돈의 힘 혹은 상업성에 노출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일기장에 스폰서업체 광고를 넣지 않고 순수한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제작·배포 행사를 치렀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1998년도 대한민국 어린이가 즐겨먹는 유명제과업체 상위그룹 회사가 사랑의 일기 600만권을 제작·후원해 준다는 제의가 있었다. 그 대신 일기장에 회사마크를 손톱만하게 넣자는 것이었는데 인추협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일기라는 순수함에 기업 손익의 논리가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여겨 고민한 결과였다. 그때 제시한 금액이 일기장 값을 합쳐 18억원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었다”며 “나머지 돈으로 부지를 사도 좋다고 요청해 온 것인데 철거된 지금 생각하면 그걸 받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쓴 미소를 지었다.

이는 EBS가 어린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상업광고를 집중 편성한다는 질타에 노출되는 현 실태를 보면 순수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상식이 개최되는 해당 도시의 어린이 가정에서 홈스테이 형식으로 전국에서 모인 학생·학부모가 숙식을 함께 하며 사회성과 친화력을 배워갔다. 초·중·고 학생이 지금은 좀 줄었지만(약 670만명) 그동안 약 90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고 대표는 “초등학생만 600만 명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에게 일기장을 무료로 주고, 일기를 쓰면 심사를 거쳐 시상을 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무슨 의도나 목적을 의식해 무료임에도 받지 않으려했던 일도 많았다”고 웃음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이와 미래에 대한 의식이 학교나 학원이 아니면 불신하던 시기에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행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며 “이런 것은 인추협 만이 할 수 있고, 하는 일이라는 자부심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강조했다.

그런 인추협 산하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개발 열풍에 밀려 무자비하게 철거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2016년의 슬픈 자화상’이다.

   
   
 

■‘세종시’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우리가 외면하면 안된다.
고 대표는 고난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인추협의 의지는 꺾지 못하고 사랑의 일기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며 “철거된 지금도 2016년도(12월 4일 예정/세종시는 12월 3일) 사랑의 일기 행사와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학무모와 함께 하는 일기교육 연수 장소로 새마을 연수원(성남)이나 KT연수원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연기군 시절이라 그런 행사를 할 장소가 없고, 특히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라고 여기에 둥지를 틀고는 있지만 지금보다 미래를 바라보는 게 세종시 아니냐는 주장이다.

미국, 일본, 중국 어린이들도 참여하고 가족들도 함께 모인다. 국제행사를 체육관에서 할 때면 영어·중국어·일본어·한국어를 하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을 공동사회자로 세워 국제적인 행사규모로, 지금 현재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데 대안도 없이 무자비하게 헐어버렸다는 것에 탄식한다.

고 대표는 “세종시, 행복청, LH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도시, 교육도시가 무엇이냐, 말로만 그저 명품도시를 외친다. 어린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이런 명칭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아닌가?”라고 강한 어조로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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