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나는 1년 중 좋아하는 때를 들라면 11월이다.

11월은 가을의 끝이기도 하지만 입동 절기가 든 초겨울이 시작하는 달이다. 가로수 길에 떨어진 낙엽들은 갈색 톤의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발에 밟힌 잎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졌어도 보기에 추하지 않다.

이 무렵이 되면 시간의 속도감을 실감하게 되니 나이 든 사람들을 서글픈 감상에 젖게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심리적 쇠락감(衰落感)은 영혼이나 육신의 건강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 따라 함께 흘러가지 않을 이 그 누구랴.

세상의 무엇이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우주의 질서와 섭리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어느 날 내 육신을 태운 재 한줌이 큰 나무아래 묻힌다 해도 그것은 살아있는 것들이 마땅히 가야할 정해진 길 일 뿐이다.

 그렇다면 빠른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애상적인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살아오는 동안 개인이나 사회를 흠집 내는 어떠한 범죄에도 휩쓸리지 않아 평탄하고도 상스럽지 않은 일생을 보내게 된 것에 감사한다. 또한 효를 바탕으로 한 자녀들의 간섭을 받으면서 비교적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으니 서글퍼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1월이라 해도 오후 다섯 시 무렵이 나는 더 좋다. 여름철이면 대낮이나 다름없는 시간대인데 11월에 들어서면 하늘은 일찍 석양에 물들고 어두움은 빠르게 시작된다. 살아가는 터전이 자연 속 전원이라면 일찌감치 내려오는 산 그림자가 바로 어두움을 데리고 온다.

도심 속 빌딩숲이라도 쉽게 밤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산 속이나 다름없다. 먹이 활동이 분주한 산새들이 대낮을 지나 산 그림자가 짙어짐과 동시에 고요한 적막감에 휩싸이는 숲속과는 달리 도심 속 어둠이 시작될 무렵부터 또 다른 활기를 찾게 되는 것도 11월 오후 다섯 시 경에 맞는 풍경이다.

화려한 꽃송이처럼 등불이 피어나고 11월 어스레한 저녁 퇴근길 샐러리맨들의 종종 걸음은 모두 내 형제들인 것처럼 안쓰럽다. 곳간 속 추수 끝낸 작물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만족하는 것도 바로 11월에 느끼는 여유다.

11월은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적당하게?따듯한 거실에 앉아 내외간이 주고받는 은근한 이야기로 薰氣를 나누기도 한다.

가로수의 잎들이 삭풍에 떨어져 땅에 굴러 쓸쓸함을 느끼게 될 찌라도 앙상한 빈가지에 반짝이는 햇살이 있어 나는 11월을 좋아한다. 추수 끝난 빈 밭에 초겨울 무서리가 내리고 들길에 뛰노는 아이들의 숨길 따라 내뿜는 하얀색 입김의 생동감도 좋다.

집을 떠나있던 자식들도 부모형제간의 우애를 그리며 귀향을 꿈꾸는 귀소본능도 11월에 갖게 되는 인간의 진정성이 아닐까.

사방이 일찌감치 어둠에 젖은 11월의 저녁 나만의 공간에서 사념(思念)에 젖다 보면 영혼의 안식을 찾은 듯 한 평안한 마음이 된다.

젊은 시절에 감명 받은 ‘제인 에어’의 시작부분을 11월로 설정한 작가 ‘샤롯 브론테’ 역시 나처럼 11월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겨울이 다 가도록 잎사귀를 떨구지 않는 떡갈나무 숲길에 11월이 오면 가랑잎 부대끼는 소리는 초겨울에 듣는 산중의 교향악이다.

내가 앉아있는 거실 유리창 밖에?석양이 붉게 물든다. 이 자리에 앉아 나는 책을 읽기도 하지만 차를 마시면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 때가 많다. 저문 나이를 사는 내가 11월의 햇살을 받으면서 해야 할 무슨 다급한 일이 있으랴. 클래식이라도 들으면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일 외에는 그 무엇도 부질없는 일이다. 되도록 향이 은은한 국화차이거나 잘 숙성된 모과차가 제격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11월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낭만이다. 거실 유리문으로 저녁노을이 밀려오고 따끈한 차 한 잔의 정취가 향기로운 11월도 내일모레면 끝난다.

나는 산기슭 햇살 바른 곳에 작은집 한칸 마련해 노후를 보내고 싶다. 내 육신이 종당에 돌아갈 곳이 자연의 품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지금도 나는 나무 향 흙냄새 풍기는 산간에 자리 잡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헛된 미련이나 아쉬움 다 내려놓고 평안한 마음 하나만 데리고 산골 작은 오두막에 살아야지. 저녁 지은 파란 연기가 산골에 퍼지고 창호지 곱게 바른 여닫이 문 밖에는 빨갛게 익은 홍시나무 두어 그루 심어 늦가을 저녁하늘에 일찍 나온 초승달과 벗 삼아야지.

잘 빚은 동동주 한두 잔에 취해 詩想에도 잠겨보고 가슴이 허허로운 날 읍내 서점의 신간 진열대 에도 들러보면서 자적하는 삶을 살아 봤으면.... 강물이 흐르는 들길을 걸어 오두막 내 집으로 돌아오면 11월의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있고 나를 기다리던 늙은 아내의 실없는 잔소리마저도 적연(寂然)한 분위기에 묻히고 말겠지.

11월의 저녁 햇살이 잠깐 만에 지나가고 어두워진 거리에 바람이 차게 분다. 오늘 밤엔 보일러에 온도를 좀 높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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