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지 않으려 일부러 살을 잔뜩 찌웠던 나는 ‘예스, 노’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무시하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밤새워 매일 쓰고 썼다. 내 유일한 장점은 성실성이다. 서재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있었다.

그동안 외톨이었다. 고독했다. 그래서 다혜를 찾기로 결심했다. 다혜, 당신은 내가 배회할 때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자야말로 선(善)의 대표자이며, 동시에 악(惡)의 대표자입니다. 세상의 어떤 부분이 멸망하는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왜 서울은 너무나 커다란 로마의 멸망을 모방하고 있는 것입니까?

끝내 만나지 않는 평행선은 없는 것. 안타까움은 소망이 되어 먼 곳을 바라보며 쏘아 올린, 크고 작은 가능성 하나를 열어 보인다.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어질해 식은땀이 난다. 무력하게 기울어지는 몸. 간신히 벽을 짚고 버틴다.

벽에 기대 다혜를 떠올린다. 방금까지 마주하고 있던 몽환적 풍경, 익숙한 사물이 낯설게 다가온다.

처음 느껴지는 어지럼증. 어지럽고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속은 메스껍고, 허우적거린다. 거울을 본다. 치솟는 욕망이 버거워. 지난 시간은 아련한 향수로 되새김된다. 물론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그때를 추억한다면 지금의 시산한 삶보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는 ‘기억의 조작’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지금보다 젊었기에 생각만이라도 사치를 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모습이 마치 겉은 멀쩡하지만, 일상의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 이상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 쓴 웃음을 짓는다. 지금 나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삶은 고해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은 복잡하다. 인생은 시험이다. 삶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래 안 돼는 것이었어.

태어날 때부터 못했어… 다 지나가리라. 인생, 정말 만만치 않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까지 아비규환처럼 살아온 소위 인간세계에서 진리라고 느낀 것은, 단 하나, 그것뿐이었다.

다 지나가리라. 날이 지나가면 몸은 나을 것이다.
그때는 굳이 다혜를 찾지 않겠지. 그것은, 그러니까 어떤 부끄러움이나 아픔을 잊는다는 것은 위로일까, 저주일까. 잘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로받은 기분이다. 다 지나가리라. 모든 것들이여. 완생을 꿈꾸며 보낸 시절이 분명 내게도 있다. 그때는 그랬다. 세상이 미생과 완생이라는, 단 2가지 상태만 있다고 생각했다.

조바심 내는 나에게 미생은 따뜻한 위로가 됐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사회에서, 나 혼자만 우산도 없이 비에 젖어 거리를 서성이고 있는 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조용히 토닥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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