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해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은 복잡하다, 인생은 시험이다, 삶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밤새 글 한줄 써놓고 다시 쳐다보고 읽다가 동창이 밝아왔다. 내 입가에 맴돌던 질문은 짧고 아버지 답은 길었다.

이 아침에 웃음이 내려앉았다. 나에겐 나팔꽃 웃음이 피어났다. 아침이 행복했다.

밤사이의 고뇌? 글 한줄, 하나에 담배 한 갑을 태우는 고심을 했다. 말이 꼬일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버지의 책을 집어 든다. 아버지의 입을 빌려 문장론을 설파한다. 아버지는 고사를 끌어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아버지는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다.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아버지의 문장 앞에 서면 삶의 군더더기가 사라진다. 숨죽여 운다. 나를 운다.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글을 썼다. 어쩌다 보니 글만 쓰고 살아왔다.

그런데 매일 아침이 슬럼프다. 독자에 대한 책임감. 돈 받고 팔만한 소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한여름 찜통더위인데도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제대로 틀지 못한다는 알레르기체질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그렇다. 공감 받지 못하는 글로 돈을 번다는 것도 미안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기에 매일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힘들다. 상처를 입기 일쑤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 지금 나는 혹시 시간을 들여 노력해보지 않고, 원래 안 된다고 태어날 때부터 못한다고 말하고 있진 않은가.

나는 사람들이 삶의 지적, 사회적,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신경증, 우울증, 정신장애 같은 삶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는 삶이 우리를 속여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기만하기에 인생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통찰을 선사한다.

“인생 정말 만만치 않다.”
“아버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요.”

그럴 때 아버지는 좋은 동반자였다. 나 자신에게 부아가 치민다. 내가 느슨해지니 사람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서다. 그래도 다짐한다. 평생 3류 로만 머무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갈고 닦았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점은 능력이 있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겉멋 때문인지 쉽게 사그라든다. 기회를 너무 빨리 주는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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