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우선해야 하는 중요한 훈련도 먼데 있지 않다.”
“…”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아무튼 닥치는 대로 많이 읽었어요.”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 시켜야 해!”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났어요!”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나야 돼!”
나의 글에서는 아버지의 여러 생각과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사회, 정치적 사안에 침묵하는 작가는 아니다.”
“…”
“소설에서 정치적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탈정치’는 오래 비판받아야 한다.”
“반체제 파벌 간 대립이 심화되고, 내분으로 사람 목숨을 어이없이 앗아가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그래.”
“그로부터 그 운동의 존재 방식에 환멸을 느꼈어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두고 지금 돌아보면 동시대 한국 문학 관계자들이 느꼈던 욕구불만(frustration)의 발산 같은 게 아니었을까?”
“주류파 순문학이 그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가는 것에 대한 문학계 내부의 불만 탓이라고 여겨요.”
“그래, 자연을 뒤틀고, 국민의 신체를 손상시키고, 국가의 신용을 실추시키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고유의 생활환경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몰라요.”
“아니, 바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
“너 만큼 스스로 소설의 창작 방법을 독자 앞에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가는 드물다.”

하류지향,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나의 소설에 아버지는 30여년 동안 읽은 열혈 팬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인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아직도 가야할 길과 인적이 드문 길 사이에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미묘한 어감 차이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인생에는 수많은 정의들이 있지만 아버지는 인생을 그리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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