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뜬 나는 물었지.

“아버지, 펜을 언제 집어 던져요?”
“그게 무슨 소린데?”
“왜, 제 소설에…, 있잖아요. 왜군을 무찌른 이야기, 그런데 그 이야기가 안 나와서 말에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서 아버지는 대꾸한다.

“얘야, 그건 오랑캐지! 무슨 왜군이야!”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 부자(父子)는 언제나 신기할 정도로 말없이도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고, 나의 아버지의 말씀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때문에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자꾸 나에게 접근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적잖이 시달려야만 했다.

불복종, 복종의 철회다. 복종이 부러움에서 나오니, 자기 최면이나 마인드 컨트롤로 부러움을 조작하지는 않는다. 부러움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인생에서 밥벌이 외엔 생각하지 않는 것. 남의 밥벌이와 비교로 내 가치를 평가하는 것.

밥벌이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인생에는 밥벌이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걸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내 인생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금이 가고 깨뜨려졌다. 그 간단한 일이 그리 어렵다. 아무리 간단해보여도 혁명은 혁명이라는 것, 내 인생이 뭔가 잘못되었다. 단단히 잘못되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처럼, 소설가가 짊어져야 할 소명이 담겨있다.”
“…”

아버지의 말을 빌리면.

“문학계의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몹시 둔해빠진 작업이에요.”
“엄청 손을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이다.”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에요.”
“그것을 감당하려는 이들이 소설가가 자격을 갖춘 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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