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신을 차리고 싶어. 조그맣고도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겠어. 기적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을 해. 나는 어리둥절해. 실망하기도 해. 나는 수백번이 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으면 내 치료는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단언해.

다혜! 시간 낭비 같고, 지루하며, 헛소리에 속아 넘어간 것 같이 화가 나. 그러다 두세시간 째는 조금 더 느긋해져. 자신을 둘러 싼 문제들이 사소하게 보이게 돼. 삶을 어렵게 하고 긴장하게 만들어. 허상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될 수 있어.

 나는 글을 썼고, 다혜는 유작으로 소설을 남겼다. 소설은 일종의 다혜라는 메시지였다.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순환과 반복을 통해 나의 우주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지금껏 추구해온 작품세계와 더불어 새로운 시도들이 융합, 통섭된 작품들을 통해 생명과 순환, 재창조의 의미를 전하고저 했다. 소설은 사람들의 뼈와 살을 구성하는 즐거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라 할 수 있어. 글은 생각이야! 진부하고 지당한 말을 안 쓴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아는 가장 까다로운 독자를 상정하지. 내가 몰랐던 걸 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거나 내가 변해야 해! 나는 우리 사회의 통념, 기존의 논쟁 구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데 관심이 있어. 아는 걸 쓰면 진부해져! 뻔한 이야기를 쓰는 건 싫어! 생각과 느낌을 문자화하는 일은 버거워! 그런데도 그 괴로움을 자청하는 것은 글쓰기가 지니는 오묘함 때문이야! 글은 단순히 말의 기록이 아니야!

그것은 자기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의미를 생성해! 써나가 보면 미처 이르지 못했던 생각들이 불현듯 나타나! 글쓰기는 앎의 빛을 켜주면서, 모름을 자각하게 해줘. 출판사와 함께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일종의 수행(修行)이야. 이 정도면 자신 있게 넘긴 원고가 빨간 표시로 가득 채워져 되돌아 와서야, 오랫동안 글을 썼으면서도 아직도 이렇게 허술하구나,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돼.

지금은 건강, 나이 듦, 죽음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살면서 자신이 찢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총 맞은 것처럼 심장이 아파본 것을 잃어버리고 까마득하게 찾아드는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내가 나를 다시 한 번 짓밟으며 삶의  감옥에서 무력하게 스스로를 태워본 적이, 사랑의 기쁨을 누리지 못해 집착으로 남은 사랑이 나를 지옥의 불로 던져 넣은 적이,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미친 채로 떠돌아다닌 적이 있는가?

젊을 때는 영원한 것, 절대적인 것, 완전한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후에는 세계관이 달라졌어. 나는 그 무렵에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했어. 심한 좌절 때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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