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이성계(李成桂)는 역성지변(易姓之變)을 일으켜 고려조를 무너트리고 조선(朝鮮)을 개국하였다.

그 당시 나라의 형편은 매우 어지럽고 민심은 흉흉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이성계는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이 민심을 바로 잡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고려충신 정몽주를 포섭하기 위하여(술)자리를 마련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와 대좌하여 권 커니 자 커니 하였을 것이다.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하여 하여가(何如歌)를 읊었다.

즉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 또 어떤 기록에는 성황당 돌담이 무너진들 그 어떠리로 되어있다.

이 노래 속에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새나라 조선에 협조하면응분의 보상을 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정몽주는 이방원의 이러한 질문이 있을 것 이라고 예상을 하였을 것이다. 이 하여가(何如歌)의 대답으로 읊은 노래가 단심가(丹心歌)이다.

즉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처 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임)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한 의미심장한 단심가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충신은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고려 충신 정몽주는 만인이 우러러 볼만한 충신이었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닌 만큼 이러한 충신이 필요 없을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다 같이 한번 음미해 볼만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요즘 일부 정치인들이 오늘은 이당으로 내일은 저당으로 또는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소위 철새 정치인들이 있다면 정몽주 충신의 충절을 한번쯤 되새겨 볼만도 하렸다.

경선 패배 후 다른 당 후보를 지지하다가 이제 와서는 자기가 주인 인 냥 행세를 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자기는 진정한 보수라 칭하며 몇 번씩이나 단체장에 출마하여 집권당을 지지해달라고 하소연 하던 자가 어느 날 낯짝 민망스럽게도 색깔이 다른 후보자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한번쯤은 황당하다고 했을 것이다.

아니 인간처럼 더러운 것이 없다고 한탄도 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배신과 배신을 거듭하면서 인류의 역사는 이어 저 왔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물론 줄을 잘 서서 성공한자들이 있다 하자 그리고 늘 그래 왔듯이 약삭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수단이고 능력이라고 항변할지 몰라도 어딘가 모르게 씁쓰레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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