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바뀐다고 연기군민헌정탑이 세종시민헌장탑이 되나”

▲논란의 중심에 선 ‘세종시민헌장탑’
▲논란의 중심에 선 ‘세종시민헌장탑’

“세종시로 되면 연기군민헌장탑을 멋대로 세종시민헌장탑으로 뜯어 고쳐도 됩니까.”

역사는 과거·현재·미래를 잇고 계승 발전돼야 함에도 때때로 누군가의 무지와 무관심에 그 의미가 심하게 훼손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세종시민헌장탑’을 꼽을 수 있다.
지난 8일 세종시 조치원읍 대첩로 116  ‘세종시민체육관’ 광장엔 과거엔 ‘연기군민헌장탑’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자칭 ‘세종시민헌장탑’만이 존재한다.

즉 조형물의 상징성 및 그 외형은 여전히 연기군민헌장탑이지만 이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엉터리 세종시민헌장탑’으로 이것의 탄생 배경에는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세종시가 있었다.

연기군헌장탑은 당시 연기군민들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지표로서 여러 단체들이 협력해 제작됐다.

특히 그 시기에는 연기군내 갈등으로 민심은 사분오열된 상태로 이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주민들을 하나로 모을 계기가 필요했었다.

이에 1993년 1월 14일 연기군의회는 군민들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으고 실천할 군민헌장을 제정했고, 같은 해 3월 연기군은 조치원·뉴조치원·연기·금남·전의 라이온스클럽, 조치원·연기로타리 클럽, 조치원 청년회의소 등의 단체성금을 포함 총 5000여만원을 투입해 연기군민헌장탑을 건립한다.

 
 

이를 반영하듯 헌장탑에는 조치원을 상징하는 중앙 주탑을 중심으로 연기군의 7개 면을 표현하는 날개를 형상화해 제비가 비상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또한 연기군을 상징하는 제비, 복숭아꽃, 향나무, 복숭아 등이 부조로 표현됐다.

 ▲전 연기군 공보실장인 김관수씨가 세종시민헌장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 연기군 공보실장인 김관수씨가 세종시민헌장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세종시 출범 이후 2013년 9월 30일, 시는 세종시민 헌장이 제정·공포 등을 근거로 역사와 전통을 깡그리 무시한 행정을 펼친다.

시는 연기군민헌장탑 중앙 주탑에 세종시 CI를 조각하고, 명칭도 새롭게 세종시민헌장탑으로 새긴다. 군민헌장도 시민헌장으로 교체됐다. 세종시의 상징 및 현 상황에 맞게 새롭게 제작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아 연기군이라는 실체에 세종시라는 겉포장만을 한 모양새가 된 것.

이 과정에서 건립 취지문도 철거돼 조형물의 제작시기, 조각가 등에 대한 내용도 없어졌고 그 자리엔 당시 유한식 시장의 명의로 ‘시민 모두는 화합의 정신으로 새 천년을 이끌어 가자’는 시민헌장 표지석이 덩그러니 설치된다.

이것이 무늬만 세종시민헌장탑인 조형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행태는 헌장탑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많은 주민들을 분노케 했다.
한 시민은 “세종시가 됐다고 마음대로 이름을 새로 새기고 내용도 바꾸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이름이 달라져도 여전히 조형물 상징은 연기군을 나타내고 있는 데 무슨 세종시민헌장탑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완전히 세종시민들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되돌려야 한다. 시 행정이 잘못됐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시는 이런 저런 변명만 늘어놓지 말고 하루빨리 원상복구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조형물을 세워햐 한다”고 강조했다.

▲1993년 3월 연기군민헌정탑 조감도 및 건립 현장 사진.
▲1993년 3월 연기군민헌정탑 조감도 및 건립 현장 사진.

또한 이날 그 당시 조형물을 제작한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출신인 차상권 조각가도 현장을 둘러보며 황망한 심경을 나타냈다.

그는 “어떻게 조형물의 상징성을 무시하고 이름만 세종시민헌장탑으로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설령 변경하더라도 그 과정을 알 수 있도록 표지석을 남겼어야 했는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다”며 “힘들게 제작한 입장에서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잘못된 부분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원상복구에는 다소 미온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원상복구를 하려면 중앙 주탑을 분리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또한 이것은 새로은 갈등을 불러 올 수 있다”며 “그 대신 헌장탑 주변에 안내문을 설치해 그 과정을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시의 속내는 전임 시장인 유한식 시장이 재임시 이뤄진 행위를 현 시장이 되돌리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굳이 이것을 건드려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냐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시가 이 문제를 질질 끄는 것 자체가 정치적 색깔을 더해 여러 논란 및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분명히 시에서 일부 문제를 인정하는 상황이라면 주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며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러 갈등이 우려된다. 시민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라는 전형적인 면피성 발언 및 행정만을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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