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봉사 헌신,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

5월의 마지막 날인 5월 31일.
원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은 5월 ‘가정의 달’을 뒤로 하고 6월 ‘호국·보훈의 날’을 맞이할 때면 잠시 과거의 애잔함과 그리움에 빠지곤 한다.

그는 6·25의 참혹한 아픔과 비극을 체험하며 그 어둠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나섰던 인물이다.

6.25 전쟁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거리의 천사들을 모아 자립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거리의 천사들을 모아 자립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모든 이들에게 그랬지만 특히 부모 형제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던 아이들에게는 오늘 하루가 지내는 데 급급했던 시절로, 누군가는 아이들의 곁에서 ‘길’을 제시하며 형이나 아버지처럼 함께 한 이가 필요했다. 그런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이성원 이사장이다.

그는 “지금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 때는 동냥을 하며 길거리를 방황하는 수많은 아이들로 넘쳐났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이들의 미래엔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라며 “하루하루 배를 채우기도 바빴는데 그저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정상적인 삶을 이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조그만 희망이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어쩌면 그들의 미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 청소년을 위한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본격적으로 봉사의 삶을 시작한 그는 1964년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희망원’을 건립한다.

희망원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교육을 통해 자활의 꿈을 키우며 타인의 차가운 시선이 아닌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또한 ‘희망 4-H구락부’을 조직해 구두닦이, 농사짓기, 토끼·돼지 키우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등 각종 기술을 가르쳤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토끼와 돼지, 닭 등을 무료 분양하기도 했다.

1979년대에는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의 ‘합동결혼식’을 열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데 기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 둘씩 자립해간 이들이 지난 40여 년 동안 500명을 훌쩍 넘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지금까지 끈끈한 정으로 연결돼 서로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고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아픔과 희망이 공존했을 ‘희망원’의 시기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제·가족들을 만나 그것을 함께 나누며 이젠 한 가정의 부모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

이성원 이사장은 “그저 말썽 많고 어리기만 했던 애들이 어른이 돼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진 것을 볼 때면 힘들었던 그 시절이 이상하게 그립기도 하고 가슴이 조금은 먹먹해지기도 한다”고 웃음 지었다.

▲무호적자 호적 취득 캠페인을 펼쳐 호적 취득에 기여했다.
▲무호적자 호적 취득 캠페인을 펼쳐 호적 취득에 기여했다.

그의 삶 자체가 오랜 봉사의 연속이었지만 그중에서 ‘무호적 아이들에게 호적을 주도록 한 것’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적이 없다는 것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1960년대 무호적자 수는 12만여 명으로 그 가운데 병역 기피자, 범법자를 제외하면 8만여 명이 여러 이유로 호적을 갖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1965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무호적자 호적 만들기’ 운동을 주창하며 전국을 돌며 캠페인을 전개한다.

그는 “호적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법적 테두리 내에서 국민으로서 다양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됐다는 의미로 이를 통해 정상적인 교육과 취업, 혼인 신고 등도 가능해진다. 이런 캠페인을 민간 주도로, 특히 그 당시 인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다는 점을 볼 때 상당히 힘들었지만 성공적으로 진행돼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캠페인 이후 법무부는 무호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주민등록증 발급에도 기여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법무부는 ‘인권 옹호 대상’을 수여했고 그의 행적을 높이 평가해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로 칭하기도 했다.

이성원 이사장은 팔순의 나이지만 아직도 지역의 원로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 지역 서민금융기관인 원세종 새마을금고의 이사장의 바쁜 일상속에 지역 후배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을 쏟고 있다.

또한 강연 등을 통해 “청소년이 누리는 현재의 삶이 부모 세대의 헌신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아야 하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랜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성원 이사장이 그의 사무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랜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성원 이사장이 그의 사무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힘든 시기에 청소년을 위한 힘들지만 빛난 길을 걸었다.
이성원 이사장의 오랜 봉사의 발자취를 다음의 글로 남기며 내일을 향한 새로운 행보를 기대해 본다.

“나는 많은 복을 타고 났다. 우리 희망원 자식들이 건실하게 자라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항상 자랑스럽고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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