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십 수 년 만에 친구가 찾아왔다. 그의 아내와 함께 기차로 왔다는 전화를 받고 역전으로 향하는 중인데 그는 벌써 내가 사는 곳을 향해 이만큼 걸어오고 있었다. 이 친구는 젊은 시절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각별하게 지내던 사이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들어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사회 초년시절에 겪었던 웃지 못 할 실수로 상사에게 혼나던 이야기를 해도 지나간 이야기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가 문득 우리의 추억이 담긴 흑백 사진 서너 장을 내 놓는다.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과 고궁에서 찍은 스냅 사진들인데 모처럼 나와 옛 기억을 더듬어 보자고 가지고 온 것이라 했다.

세월 따라 사람은 가도 남는 건 사진뿐이라더니 몇 장의 사진에서 옛일이 새롭게 떠오른다. 친구는 그중 한 장을 내 눈앞에 들이대면서 자세히 보라고 한다. 나와 친구 사이에 어떤 여인이 서 있는데 눈이 침침해 잘 안 보인다.

“자네 여자 친구였나 보다” 했더니 그는 펄쩍 뛰면서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내가 사귀던 여인이라고 한다.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미니스커트를 입고 백색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지금보아도 제법 세련된 모습이다. 곁에는 친구의 부인과 내 아내도 함께 있어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다. 잘 모르는 여인이라며 나는 얼버무렸다.

오후 세시가 지나자 돌아갈 기차 예약 시간이 되었다며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는 자주 만나자 했고 그는 그러마고 약속을 했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우리의 현실이 어디 그리 쉽게 오갈 수가 있겠는가. 그가 돌아가고 난 뒤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바라보는데 사진 속 그녀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서 때로는 아프게도 하고 때로는 부끄럽게도 하는 여인. 그런데도 오늘 그녀를 모른다며 또 한 번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

이십대 후반. 결혼 적령기가 되어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언제 만나도 조용한 성품과 겸손해 보이는 태도에 마음이 끌렸다. 몸에 붙는 청바지와 베이지색 코트가 잘 어울리던 그녀에게 마음의 전부를 주기로 했던 것은 성격이나 외모에 별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자신의 환경과 감정의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던 그녀에게 내 심경을 고백하게 된 것은 그 해 가을이었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던 산정의 호수와 무성한 갈대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내려오는 길에 그녀는 처음으로 내 팔짱을 끼었다. 비탈진 곳을 내려오면서는 나또한 그녀의 손을 잡기도 하고 어깨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기도 했다.

함께 걸으며 발걸음의 폭이 적당하게 맞는 것이 참 좋았다. “앞으로도 평생 지금처럼 함께 걷고 싶어. 누가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은 채 인생을 우리 둘이서 함께 걸었으면 좋겠어.“ 그때의 감정을 숨김없이 말했던 내 속을 진솔한 사랑의 고백으로 받아들였다며 그녀의 마음도 나를 향하게 되었다.

그 날부터 지인들에게 소개하며 분홍빛 앞날을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친구를 동행하여 고궁에 들러 셋이 함께 사진을 찍은 것도 그 무렵이었으리라.

그녀의 어머니께 청혼 겸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버지는 연전에 타계하셨고 1남 2녀 중 둘째인 그녀와 아직도 어린 남동생과 셋이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손위 언니는 현재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며칠 뒤에는 나 또한 그녀를 내 가족들에게 소개를 하게 되었다. 홀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이미 출가한 두 누님이 가족의 전부였던 내 조건은 지금 생각해도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었다. 스커트의 길이와 머리모양 하며 립스틱 색깔에 이르기 까지 신경을 쓴 그녀는 우리 집 대문을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뜰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던 누님이 먼저 그녀를 맞았다. 그런데 그 때 내 누님과 그녀의 만남의 순간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영상이 되어 스톱모션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아! 바로 너로구나.” 이미 그녀를 잘 알고 있었던 누님과 한자리에 앉아 저녁 식사도 했지만 중요한 손님을 맞는 정중함 보다는 이웃을 대하듯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게는 언뜻 좋지 않은 예감이 스치는 것이었다.

어느 여인이 남편을 폐결핵으로 잃고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 슬하에는 과년한 두 딸이 있는데 그들 역시 폐가 좋지 않아 큰딸은 경남 마산에 있는 요양원에서 가료중이라는 딱한 사정을 언젠가 누님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 중 둘째딸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니. 생각해 보니 그녀역시 가끔씩 잔기침을 할 때가 있어서 오랜 감기로 고생한다고 판단한 나는 몇 번인가 감기약을 권한 적이 있었다. 누님이 그의 사정과 형편을 잘 알게 된 것은 그녀의 어머니와는 여러 가지 가정사를 함께 의논하며 지내던 가까운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만 해도 폐결핵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난치병이었다. 이날부터 우리 집안에서는 그녀 가정의 병력을 염두에 두고 부정적 견해를 보이게 되었다. 남녀가 진실로 사랑해 장래를 약속 했다면 상대가 어떠한 지병으로 괴로워하더라도 초심(初心)을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랑의 통념이며 속성이며 선택해야할 바른길이라는 것을 낸들 왜 모르겠는가.

몇 개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게 된 우리는 더 이상 회복할 수가 없는 관계로 변해갔다. 어떠한 난관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그래야만 했을 사랑의 감정이 이성적으로도 판단해야 할 결혼에 있어서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어 결국 부끄러운 결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허다한 삶의 흔적들에 묻힌 추억속의 여인을 이제는 잊을 때도 되었다. 그러나 내 부끄러운 사랑은 궂은날 신경통처럼 가슴을 찌르는 가시로 남아있다. 이 시점에서 만일 길을 가다가 우리가 우연히 마주친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외면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로 인하여 그녀에게 옛일을 기억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사랑에 용감한 배필을 만나 평생을 사랑받으며 다복하게 살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 같은 남자쯤 기억 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렸기만을 바랄 뿐이다.

짧은 하루가 가고 어둠이 내려온 산마을에 밤바람이 차갑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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