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란 ‘주당풀이 계승자’ 향토문화유산 지정

▲김향란 주당풀이 계승자.
▲김향란 주당풀이 계승자.

‘무속신앙’은 오늘날 일반 대중들의 무관심속에 점차 그 명맥 또한 사라지고 있지만 한편으론 미약하나마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를 확인하듯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달 21일 세종시는 ‘주당풀이’를 세종시 향토문화유산 제66호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주당풀이 전승자인 조치원읍 봉산리 산신암 김향란(62세)(한국불교 태고종 원각보살)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졌다.

일반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대다수가 ‘주당풀이’에 대해 모른다. 다큐멘터리나 민속박물관에서 접해 봤다면 다행일 것으로, 그나마 미신에 불과한 ‘굿’으로 치부하는 이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우리 조상들의 의료행위 한 영역을 ‘굿’이 차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굿이라는 주술적 치료를 통한 민간 의료행위가 일반적이었고, 그 중 ‘주당풀이’는 환자의 병을 낫게 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작두타기, 미친굿 등 치병(治病)굿 중 하나로 일명 ‘병굿’이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서 주당(周堂)이란 민속신앙에선 ‘혼인이나 장례, 굿과 같은 의례에서 꺼리는 귀신’을 뜻하는데 민속에서 언급되는 대표적인 살은 주당살(周堂煞)과 상문살(喪門煞)이 있다.

 
 

이런 살을 제거하기 위해 무당이나 법사가 ‘살풀이’가 하는데 이런 ‘주당을 많은 사람’을 주술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행해지는 굿을 ‘주당풀이’라고 말한다.

주당풀이는 환자를 죽은 사람을 간주해 모의 장례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돼 각종 희생물을 ‘대수대명(代數代命)으로 삼아서 환자 대신 장례를 치름으로서 주당살을 풀어낸다.

앞서 언급했듯이 급속한 우리 사회의 현대화는 주당풀이 등의 다양한 굿을 우리 조상부터 전래되는 민속문화라는 시각보다는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크다.

현대인들의 외면 속 민속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고 무속신앙의 전승자들도 자신들의 힘만으론 그 명맥을 잇기 어려운 것 또한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지난 30여년 간을 무속인으로, 또 ‘주당풀이’ 전승자로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전통문화를 묵묵히 지켜가는 원각보살에 대해 높은 평가가 잇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이를 개인의 영역이 아닌 관계 당국에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김향란씨가 춤을 추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향란씨가 춤을 추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의 이면에는 무속인 될 수 밖에 없는 그의 운명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무남독녀의 외동딸로 태어나 성장한 그는 결혼 후 원인모를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 왔다고 한다.

원각보살은 “내가 생사를 넘나들고 있을 때 (꿈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칡넝쿨 잡으려 하자 하늘에서 ‘너는 아직 올라올 때가 아니다. 아래 세상에서 큰일을 할 몸이니 내가 네게 신비의 힘을 주겠다’고 하며 칡넝쿨을 잘라냈다”며 “눈을 떴을 때는 의식을 잃은 지 10일이 되던 날로 남편과 자식들은 울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또 다시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희귀병에 걸린다.

어느 날 보살 한분이 산에 올라가 산신할아버지에게 빌어야 산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봉산에서 무조건 빌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절신한 맘으로 기도를 시작하니 갑자기 두 눈이 붙어버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더욱 애절한 맘으로 기도했다. 눈 속에 집채만 한 불덩이가 가득 차더니 불덩이 속에서 알 수 없는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는 것을 보자 서서히 눈을 뜰 수가 있었다”고 말하며 “이후 그동안 걷지도 못하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원각보살은 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한 후 9년간 오봉산 바우배기에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한국불교 태고종 원각보살이 무속인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신내림 굿을 받지 않고 꿈을 통해 신을 받아 중생구제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당대 최고의 무당 곽보살(유기정씨)에게 굿을 전수받은 김종락 법사를 만나 본격적인 무속인의 삶을 살게 됐다.

그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충청지역의 고유의 굿으로 길 닦기를 비롯해 병굿, 미친굿, 삼신굿, 안택굿 등을 전수받았고 이와 같은 전통문화 유산의  소실을 방지하기 위해 후대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또한 원각보살은 전통 보존을 위해 전통 굿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각종 무구 제작도 본인 스스로가 진행한다.

‘주당풀이’를 하기 위해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 처용(處容)이라고도 하며, 경상도 방언으로는 ‘허 제비’라 함)을 만드는 일부터 직접 한다. 제웅은 짚으로 만들며 열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그대로 형상화한다.

옛 전통이 사라지고 계승되지 못해 많은 무속인들이 외부에서 물품들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스승들이 해 온데로 고집스럽게 복잡한 운명의 실타래를 하나 둘씩 풀어간다.

원각보살은 굿을 통해 개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지난 2014년 9월엔 ‘오봉산 산신암 대동제’를 열고 세종시를 위한 굿판을 크게 놀아보기도 했다.
대동제는 세종시 건설에 따른 악기(惡氣)를 막아주고 명품 세종시 건설을 위해 독경을 시작으로 제석 굿과 신장거리 등이 진행되며 악기와 액운을 물리치는 의식이 거행됐다.

▲원각보살이 작두타기를 하고 있다.
▲원각보살이 작두타기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시퍼런 칼날 위에 맨발로 올라가 춤을 추는 ‘작두타기’다.
평지에서 타는 ‘평지타기’와 계단으로 만들어 진 ‘상봉작두’, 그리고 맨 꼭대기에 마련된 ‘대작두’에 오른다. 원각보살은 속인들에게 신의 존재를 알리며 굿판은 더욱 긴장감과 흥분을 자아낸다.

무당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작두타기는 그 자체가 미스터리한 일로 특히 원각보살의 작두타기는 작두가 최대 48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작두를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자체도 중요하고 대단하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외형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민속 문화에 담겨진 정신과 소망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지극한 정성으로 빌며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간절함’ 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켜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간절한 기적이 이뤄진다.

원각보살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생각한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활발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때론 직접 그들을 찾아 돕는데 발벗고 나선다. 신이 항상 우리 삶속에 그들을 살핀다는 것을 잊지 알리려는 듯.

김향란씨는 “오랜 시간을 무속인으로 살아왔지만 한편으론 많은 아쉬움도 있다. 시민들이 주당풀이를 비롯한 굿을 단지 특이한 볼거리가 아닌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인식하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많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속에서도 전승자의 노력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는 ‘주당풀이’.

이번 ‘세종시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주당풀이 등 우리 고유의 무형의 문화적 소산에 대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를 재평가를 통한 ‘무형문화재’ 지정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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