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천광노 학당장
▲천광노 학당장

새누리 유승민과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진퇴문제로 심란하다지마는 사실 오늘은 우리 대한민국에 경사가 있는 날이다. 제헌국회 이후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맞아 후보자가 선관위에 후보를 등록신청 마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날 우리는 떡하고 풍장을 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300명을 잉태한 엄마들처럼 기뻐해 마땅하다. 그런데 어째서 역한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는 거지?

공천에서 뽑힌 이들을 선량(善良)이라 하기도 한다. 선량이란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 선량 300명으로 국회를 채워 그들로 하여금 국민이 살아갈 나라의 기초를 놓게 하자는(입법) 것은 민주주의의 꽃이며 국가의 향연이라 할 일인데 어째서 역한 냄새라니 이 무슨 말이며 어디에 근거한 무슨 소리냐 할 것 같지만 선량들이 선량이 아닌 한량이거나 한참 아래로 내려가 모함, 시기, 질투, 오만, 거만, 도대체 인간성에서 저 아래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라 한다면 증거가 뭐냐 하겠지?

증거는 선량이라는 후보 당사자를 말하지 않는다. 이들을 선량이라고 뽑아낸 과정이 바로 역겨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을 보면 최선은 국민이 아니라 자기 입맛에 맞췄다는 점이며 그 입맛이 5000만 공통의 한국인의 밥상이 아닌 한둘의 입맛대로 뽑았다고 보여서이다.

이건 좀 덜한 듯 하지만 비례대표공천 순번에서 보았듯 더민주당도 깔끔치 못하다. 비례공천 2번을 취한 긴종인대표의 근간은 무욕이라 강조할수록 과욕이고 노욕이라는 평론가들의 말에 공감치 않을 수없어 처절한 절규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낙천한 당사자의 분노가 아닌 국민의 입맛에 너무나도 멀고 먼 추악한 냄새가 진동하였기 때문이다.

말을 빙빙 돌리는 것 같아 바로 말하면 이미 모든 방송들. 특히 종편TV의 정치평론가들이 주저함 없이 반복한 말이 그것이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휘두른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건데, 그 보이지 않는 손은 빨간 상의를 입은 여성으로 그려진 시사만평그림도 있었으니까 결국은 누구에게나 아주 “잘 보이는 손”이 공천했다는 쪽으로, 그러더니마는 마침내 보이지 않는 손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직접사로 확정한 바 있어서이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이 공천하면 안 된다는 건가?

그건 안 되는 것 확실하다. 과거 왕이 정승이나 판서를 뽑듯 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나 대변자가 아니라 뽑은 사람의 대변자나 대리인으로 임기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누군가 개인 입김이나 영향력이 그를 그 자리에 앉힌다고 하는 것은 김정은이나 하는 짓이고 과거 독재 정권의 유신정우회가 같은 얘기니까 속은 썩었어도 외양은 대통령이 뽑아선 안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그래도 된다고는 못해도 여럿이 말했다. 국정후반기 동력을 유지하고 차기 대통령이나 퇴임 후를 생각하면 국회에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는 의원이 많아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레임덕을 최소화 하고 나라를 안정적으로 임기 말까지 이끌고 가려면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들 하기도 한다. 허나 이런 걸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고 하는 건데 왜냐 하면.

대통령의 임기후반 국정의 안정성 보장은, 내편에서 나를 돕는 의원 열 보다 헐뜯는 의원 한 둘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정석이다. 야당을 따 돌려놓고 아무리 내 편을 많이 두어도 야당의 말이 옳다면 내 편의 머리 숫자가 열배 많아도 국민은 한 마리 미꾸라지를 응원하여 대통령은 외롭고 레임덕은 배가 한다. 후반기 국정안정의 비결이 뭔가에는 원론이 있다.

원론은 삼권분립으로서 내편이 적어도 입법부 자율에 맡겨야 한다. 오히려 후반기 국정안정을 위해 대통령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야를 떠나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의원을 뽑아 달라면서, 진정한 국가발전을 위한 의정활동을 잘 할 사람을 뽑아 달라는 것이 백번 이기는 길이다. 그러니 이번 공천은 대통령이 잘못 생각한 측면이 있어 대안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만일 여기서 보이고 안 보이는 손은 없었다, 허구다, 라고 한다면 공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로 넘어 간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하면서 냉혈한처럼 단 한 번 웃지도 않고 마친 공천은 공천이 아니라 낙천과 탈락이 주가 된 격인데, 19대 국회가 더러웠으니 절반을 바꾼들 왜 몰라주느냐 하겠지만 오만한 말투와 예를 잃은 낙선은 인간성까지 의문이게 했다. 내려오시라는 말을 낙천으로 한다면 위로를 곁들어야할 건데 무슨 염라대왕 턱짓하듯 해버린 공천 과정은 역한 냄새보다 더한 악취로 다가온 선거와 오늘 후보등록이 입맛을 더럽히고 말았다.

결론은 확연해 졌다. 그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처럼 지지하는 정당 후보의 공천은 맑지 못한 면이 있어 덜 더러운, 즉 덜 역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고르고 골라도 부족하고 좋은 사과밭에서 고르고 골라서 따내야 할 나라의 일꾼이 오염된 나무 병든 사과나무에서 덜 병든 사과를 골라 절반은 도려내고 먹어야 한다면 사과보다 더 문제는 사과나무다.

사과나무를 뿌리 채 캐 새로 심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박근혜 당시 대표는 국민어록 같은 명언을 남겼다. 바로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더니 지금은 어떠냐를 볼 때 이번에는 “이번엔 내가 속였고 국민은 또 속았다”로 바뀌고 말았다. 다시는 속이면 안 된다고 한 대통령이 정말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아닌 척 해가며 우리 국민을 속인 것인가? 아니고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소신인가? 답은 “밖으로 굽는 팔이 어디있느냐”고 스스로를 달래고 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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