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천광노 학당장
▲천광노 학당장

지난 주는 한국이 큰 소용돌이에 휘말린 주간이었다. 아니다, 이건 지구촌이 거대한 돌풍에 휘감긴 격이었다. 이세돌과 알파고간 인간 대 인공지능의 바둑대결 5국은 단순 바둑판이 아니라 거대한 청백전을 넘어서는 인간의 몸부림 한 판과도 같았던 날들이었다.

이세돌은 한문이 아닌 우리말 이름이라하기에 찾아보니 아버지가 바둑돌로 세상을 지배하라는 뜻으로 지은 한문 李世乭이란다. 거대한 돌의 세력이라고 볼 바둑을 두고, 두면 이기는 이름 勢乭이 아닌가 싶은 감도 잡힌다. 어쨌든 총 5국의 대전에서 제4국에서의 1국을 승리한 이세돌 9단의 승리는 오늘 내일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 회자되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될 것이다.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를 알아보면 이세돌의 아버지가 어린나이 6세부터 바둑을 가르쳤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한 마디로 조기교육이라 할 일인데 조기교육과 시련을 견딘 인내와 승리에 대한 열정이 저력이라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호모사피엔스라는 인류명칭이 등장하였다. 마침내 현대인이 되어서는 사람 중에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현대인이라는 의미로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라는 지구촌을 휘어잡은 인간으로 등극하였다. 그런데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하여 이긴 것은 달 착륙처럼 사피엔스에 더더블을 붙일 대 역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는 못이길 상대를 이긴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5국을 다 이길 것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3연패를 당하자 드디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긴다는 충격에 휩싸였는데 이런 측면에서 볼 게 아니라 필자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고 제안한다.

어찌보면 알파고는 무생물이다. 생물인 이세돌과 견주는 것 자체가 기운 축구장과 같다. 알파고는 이세돌보다 대국숫자에서 수십만 배를 앞서고 초당 경우의 수에서 이세돌의 2만배를 앞선다니까 도저히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만능의 수를 가진 상대지만 이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모든 만 가지 2만 가지 경우의 수 모두가 다 창조개념보다는 경험개념에서 나온다는 것이 다르다.

이세돌도 경험칙에 의한 돌을 놓기도 하지만 이세돌은 창의적인 경우가 절반이상이라면 알파고는 창의의 경우에 해당하는 수는 적고 경험적경우의 수를 절반이상 놓게 된다고 보인다는 것이 단견인지는 비전문가여서 장담하지 못하나 불공정은 이에 머물지 않고 뒤에 응원군단에서 자문을 하는 컴퓨터의 숫자대비 이걸 무어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라면 이것은 99%가 상업논리라고 하는 것이다.

구글은 이로서 얻는 게 많다. 단순 껌깞 수준의 돈 20억을 쓰고 구글이 거둔 수익은 예상수익포함 미래금액으로 2조원을 능가할 것으로 보여 만배도 넘게 된다. 달나라에 착륙하는 인간처럼 구글은 이로서 향후 어마어마한 브랜드선전효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 월드컵처럼 돈받고 유로로 중계한다면 단박에 수조원 대를 거둘 것이다. 이세돌은? 글쎄 100분의1만 받아도 얼마지? 달랑 10억 대 돈을 걸고 벌린 이벤트치고는 구글의 일방적 승리요 전리품 독식의 어마한 대성공이었다.

우리는 리턴매치를 고대한다. 이미 제안했다는데 거부할까? 그런데 이런 문제는 참 자잘한 문제라 보는 바이고 진면목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바둑돌의 생사문제와 차지한 집 다소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장래가 보인다는 사실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을 보면 두 가지가 보인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에 발달을 거듭하여 마침내 인간 아닌 인간 즉 인공지능의 기계를 인간처럼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문명이 학문을 타고 마침내 지구촌을 살기 좋은 에덴동산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는 찬란한 금빛전망이 첫째다.

다음은 거꾸로 흑암의 어두운 골짜기로 떨어져 내릴 인간의 멸망도 보인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산업이 우리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을 것이다. 일당 백이 아니라 일단 만이 되어 로봇한대가 인간 1만명의 노동을 대신 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냥 먹고 놀면서 로봇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구글은 그런 로봇 인공지능기계를 통하여 한국인이나 아프리카 인들의 먹을거리까지 공급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 음악가가 되고 문학인이 되고 체육인이 되거나 바둑기사가 되면 어떨까 싶지만 모든 직업을 몽땅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날 70억 인구는 무엇으로 소득을 얻을지도 동시에 떠오르는 두 번째 미래현상으로서 이것은 참 걱정되는 미래가 된다.

우리네 기성세대는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로의 변천에서 각자 능력에 따라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문제가 인공지능까지 끼어들어 인간보다 우수한 로봇이 생산되면 기업가들은 무조건 인간고용을 피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열 명에 로봇 한 대만 쓰라는 등 새로운 고용법안이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참 우려되는 미래다.

하지만 구글은 말했다. 알파고의 아빠라고 불리는 메디스하사비스는 인간의 일자리를 뺏고 노동력을 독식하여 재벌들에게 더 많은 부를 쌓아주는 말세의 강자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꼭 그래야 할 것이나 인간의 욕심은 더더더더 라고 하는 욕심이 실재한다.

그러면 인공지능 한 대가 인간 수만 명을 이기게 된다면 누가 이를 피하려 하겠느냐에서 기업가들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뭘 어째야 할까? 답은 인공지능과 동시에 인간사랑, 인간에 대한 배려와 연민, 즉 인간성을 채워가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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