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아내는 오래전부터 무릎의 통증으로 많은 고생을 해왔다. 체중을 좀 줄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걷기운동은 물론 식사량도 절반으로 줄였다. 수영장에도 다니고 물속 걷기 등으로 체력을 소모하면서 3개월쯤 지나가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체중은 줄어들기 시작했어도 이미 망가진 무릎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몇 년 전 부터는 그 분야에 이름난 정형외과를 지정해 놓고 연골 재생에 좋다는 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진통효과 외에는 기대할 수가 없어 점점 수술을 하자는 쪽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게 되었다.

그러던 중 딸네 가정이 외국으로 살러 가게 되었다. 첫 애를 낳고 수년이 지났어도 풋내기 주부를 면치 못한 딸은 타국에서 뿌리 내리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가끔 사위가 장기간 출장이라도 떠나게 되면 아이만 데리고 혼자 있기가 무섭다면서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놓고 제 어미를 불러들인 적이 여러 번 이다. 외국이라 해도 멀지 않은 곳이라 가고 오는 경비가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럴 때 마다 아내는 무릎통증으로 인한 괴로움을 참으면서도 오고 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눈에서 떠나지 않는 귀여운 손자를 만나는 일이 통증을 잊을 만큼 행복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외국 생활이 안정을 찾게 될 즈음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두 아이 돌보는 일로 전에 비해서 더 바쁜 생활이 시작 된 것이다. 아내는 해산구완을 시작으로 최소한 3개월을 주기로 그 나라를 드나들면서 뒷바라지를 했지만 힘들다는 내색 보다는 아이와 함께 한다는 행복감에 젖어 지냈다. 그러나 무한정 집을 비울 수 없어 백일이 될 무렵에 아내는 귀국했고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사위는 도우미를 구하게 되어 우리는 일단 걱정은 덜게 되었다.

이제는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해야 할 때다. 그러나 아내는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자꾸만 미루는 것이다. 여름철엔 너무 더운 일기 관계로 병원생활이 어렵다며 가을로 미룬다. 짧은 가을에는 집안일이며 친척들의 대소사 문제가 겹쳐서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겨울이 오면 수술한 뒤에 혹시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더 큰 낭패라며 또 다음해로 미루다가 오늘 까지 오게 되었다.

그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TV 프로에서 무릎에 인공관절을 이식하는 수술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전기 드릴로 뼈를 잘라냈을 때 덜렁덜렁 흔들리는 두 다리하며 절개된 뼈 사이로 인공관절을 맞춰 넣는 과정에서 들리는 망치소리를 듣고 내심 벌벌 떨고 있었던 것이다.

딸아이는 성장하는 둘째아이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동영상으로 보내온다. 이제 14개월로 접어든 아이는 제 어미의 말귀를 조금씩 알아듣고 시키는 대로 하려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가. 엄마 아빠라며 첫 발음을 배우는 과정을 지켜본 어른들이라면 그 감격스러움을 말로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저녁시간에 동영상이라도 받는 날에는 밤늦도록 아이의 모습을 되돌려 보면서 안아주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보인다.

아내는 그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같은 처지의 젊은 한국인 부부들이 사는 집에는 대개 친정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아내와 정서적으로 다르지 않은 세 할머니들이 만났다. 근래에도 자주 카카오 톡으로 인사를 나누며 지내는데 그럴 때 마다 아내는 무릎의 통증으로 자유로운 나들이를 할 수없는 형편을 아쉬워했다.

지난 추석연휴를 지나서 아내는 수술 일정을 잡고 병원에 예약을 했다. 나는 이번에도 그전과 같이 수술 날짜를 미룰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러나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것이다. 드디어 그날이 내일로 다가왔을 때 그녀는 집안 살림을 정리하고는 입원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내는 지난해 가을에 양쪽 무릎을 동시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서울인근 전원주택에 산 적이 있다. 그 무렵에 아내는 내 무관심으로 인해서 무릎이 감당키 힘든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살았다. 내가 출근하고 난 뒤에 아내는 남자가 해야 할 힘든 일을 손수 처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연탄재 쓰레기를 머리에 이고 먼 곳 까지 걸어야만 버릴 수 있었던 당시의 생활환경은 아내의 무릎과 관절을 서서히 무너트렸을 것이다. 첫 딸아이가 걸음마를 막 시작했을 무렵이라 어린 것이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먼 길을 따라 걷던 애처로운 모습은 지금도 아내에 대한 미안하고도 부끄러운 지난일 로 남아있다.

결혼 후 오늘까지 늘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집안. 거실바닥이나 구석구석을 반짝이게 하는 아내의 손길은 무릎에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게 하는 중요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현재 아내의 퇴행성관절염이나 무릎 질환은 순전히 내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회심을 하고보니 좀 더 신경을 쓰지 않았던 자신이 또 부끄러워진다.

아내는 여섯 시간의 수술 시간이 경과한 뒤에 엄청난 통증을 누르며 병실로 돌아왔다. 무릎 뼈를 전기드릴로 잘라낸 그 자리에 금속 기구를 넣고 인공 관절을 끼워 넣을 때 들리는 망치소리를 어떻게 인내 했으며 시종 깨어 있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부분마취 상태에서 수술의 전 과정을 어찌 감당했을까.

고통의 순간도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 걷히듯 점차 사라지고 인체의 신비는 새로운 골 구조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두 주일이 지나자 절개하고 봉합한 부위의 정리도 끝났다.

수년간 동거하던 무릎통증과 혹독한 고별식을 이렇게 치렀다. 적극적인 물리치료와 재활의지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온전히 회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6개월쯤으로 본다고 했다. 가끔씩 수술 부위로 찾아오는 통증만 가라앉고 꾸준하게 운동을 한다면 정상적으로 걷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하니 지금까지 겪었던 통증과는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남은여생을 경쾌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문병 왔던 아내의 친구가 한마디 한다. “백내장 수술에 눈도 밝아 졌고 무릎마저 깨끗하게 고쳤으니 이제부터는 훨훨 날아다니겠네....”

아무렴 날아다니건 뛰어 다니건 남은 인생은 어디라도 마음대로 다니면서 환하게 웃으며 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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