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어떤 모임에 참석해서 저녁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약속보다 반 시간정도 늦게 도착했더니 일행들은 벌써 술잔을 앞에 놓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몇 순배가 지났는지 얼굴마다 불콰하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내 막걸리 잔이 내 앞에 주어졌다. 모처럼의 만남에 가벼운 마음으로 술잔을 들었는데 좌중 한 사람의 건배사가 파격적이어서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건배사를 제의했던 회원은 평소에도 언어를 구사 하는데 순발력이 있는데다가 성격도 쾌활한 편이라 어떤 모임에서든 좌중을 웃기기도 하고 진행을 부드럽게 주도하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잔이 나를 향하더니 “형님의 원만한 성생활을 위하여...” 라고 외친 것이다. 남녀 여러 명이 합석을 했는데 모두들 가볍게 혹은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술잔을 들었다. 그러한 건배사를 듣기는 평생 처음이다. 나를 향해서 모두들 민망스러워 하면서도 즐거운 척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좀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뭐 어떠랴.

평소에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인데다가 연령대가 남녀 모두 지천명의 때는 지났으니 그 정도쯤은 별스럽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건배사는 정말로 나의 원만한 성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 가려는 순간적인 언어의 유희였을 것이다.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니 나보다 연장자는 몇 안 되었다. 육십 대 후반의 젊지 않은 인생을 가고 있는 내게 면구스러운 일 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분위기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줄 아는 것 역시 원만한 성생활만큼 중요한 원만한 사회생활이다.

이와 같은 덕담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젊은 축들을 위한 일종의 주문(呪文)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오십대 중 후반을 지나고 있을 그들에게 원만한 성생활이란 원만하게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데 필요한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을 대략 80세로 보았을 때 결혼 생활은 줄잡아 50년 이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긴 세월을 함께 살면서 부부간에 주고받는 상처로 대립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웬만한 부부갈등이라면 서먹해진 관계라도 하루 이틀 지나며 원초적 본능을 해소하는 사이에 저절로 화해되는 것은 성생활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원만한 성생활로 인한 이점은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든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서울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팀의 발표에 의하면 섹스는 신이 내린 최상의 보약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코레스트롤 저하와 다이어트 및 통증완화 그리고 뇌를 자극해 치매예방이나 노화방지 그리고 우울증 치료 등 여러 가지 이로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단, 건전하고 정상적인 섹스를 의미하는 것일 뿐 그렇지 않을 경우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을 보면 역시 원만한 성생활이 주는 유익함에 대한 학술적 근거는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원만한 성생활이란 어느 한쪽의 욕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육신과 심리적으로 평안한 상대역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서로가 사랑하고 아끼려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야 비로써 원만한 성생활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날의 건배사는 그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부끄러워서 숨겨야 할 제안이 아니라 반드시 지녀야 할 가치 있는 과제였다. 원만한 성생활을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은밀한 성생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려질 수 없겠지만 어떤 수치를 보니까 세계인구 40대 이상의 남성들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이들이 원만한 성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40대 이후 남성들 가운데 2백만 명이상이 그러하다는 것을 보면 적은 수치가 아니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야 원만한 성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본다면 평안하고 싶은 욕구를 저해하는 여건이 얼마나 많던가.

내 나이쯤 된 남성들의 성생활은 어떠할까. 만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한다면 배우자 역시 그 연령대이거나 그 연령에 상당하는 세대인 것이 보편적인 부부다. 남성인 경우에는 끊임없이 용암을 분출해 내던 활화산의 시대는 지났어도 자신의 육신 속에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를 묻어놓은 채 휴화산의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중심을 두었거나 올바른 몸가짐으로 욕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여정에서 휴식중인 화산이 폭발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매스컴을 통한 건강강좌는 노인일수록 남 녀 간의 스킨십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提言한다. 따라서 성생활은 월 2,3회는 갖는 것이 좋다며 건강 생활로 안내 하기도 한다. 다년간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실험으로 공인된 자료를 발표한 내용일 것이다.

늦은 나이가 되도록 성생활을 즐기려는 마음은 대부분의 남성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체력적인 조건과 여유롭지 않은 경제생활, 또한 배우자와의 영별 등으로 상대를 만날 수없는 이유 때문에 원만한 성생활을 즐기는 이는 많지 않다는 내 생각이다.

경제적인 이유란 전문 의료 서비스를 받아 그 분야에 적합한 시술이나 투약의 방법으로 해결 한다는 어느 비뇨기과 의료인의 조언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을 이용한다는 것이 최선이거나 타인에게도 권유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외에도 배우자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어도 대개의 어른들은 이런 저런 사유로 원만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잦아들지 않은 남성의 욕구를 해소 할 만 한 대부분의 합법적인 상대는 이미 雲雨의 정을 나누는 것이 거추장스러울 만한 시기에 도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폐경기 이후 급격하게 저하되는 여성의 성욕감퇴로 성생활을 멀리하게 되기 때문인데 한국인은 50대부터 부부간 성생활을 아예 하지 않는 비율이 30% 이상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발표)

이 무렵이 되었다면 성생활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라 여기고 그에 대한 미련은 그만 내려놓는 것이 자신의 품위나 아내의 입장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만일 어떤 뜻하지 않은 기회가 있어 남녀 간 하룻밤 쾌락의 시간을 보낸다 해도 그것은 성행위일 뿐 성생활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치 않는 행위를 상대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성추행이나 성 폭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강요받는 것 역시 원만한 행위는 아니다. 자신의 욕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다. 그것은 원만한 성생활이 아니다.

지난 해 늦가을, 은행나무 가지마다 노란 잎이 바람에 날리던 어느 날 늦은 오후에 한 여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등산모임에서 친하게 된 그 아이는 나와 한 세대 가까운 차이가 있어 나를 선생님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분 좋은 때는 큰 오라버니라며 까불기도 하는 여자다. 시내에서 만나 가볍게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질 예정이었는데 어쩌다가 기회를 놓쳐 자연스럽게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반주로 곁들인 소주 몇 잔으로 부드러운 대화를 나누는데 격의 없는 분위기에 젖게 되었다. 그 아이 역시 밝은 표정으로 불그레하게 상기된 표정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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