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외가 잠시 맡아서 키우고 있는 외손자 윤우 이야기다. 아이의 지능이나 신체적 발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늘 감사하며 산다. 월령(月齡)에 따라 관심사가 변하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 동안 자동차와 자동차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에 빠져 지낸다 싶었는데 이제는 차량의 명칭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엔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의 이름을 묻기에 보이는 대로 알려주었더니 길에서 만나는 차량을 보면
“저건 아반떼” “저건 소나타” “저건 에스엠 화이브.” 이런 식으로 알아맞힌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차의 이름을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벤츠’라고 알려주었더니 아이의 머릿속에 그대로 입력이 되었다. 할아버지 차는 누가 묻더라도 ‘벤츠’라고 대답한다. 길에서 혹 내 차와 동일한 자동차를 발견하면
“저기 벤츠 간다.” 며 즐거워한다. 실은 내차는 딸아이가 시집가기 전에 타던 중형차 인데 사위가 새 차로 바꾸고 나에게 인계한 오래된 차다. 장난삼아 알려 준 내 거짓이 약간 마음에 걸린다.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만회 하려면 지금이라도 진짜 벤츠 승용차로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아이를 종일 방안에만 데리고 있자니 갑갑해한다. 가끔씩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강아지처럼 뛰며 좋아한다, 그러나 즐겁게 뛰는 것은 아이일 뿐, 그 모습을 바라보며 따라다니는 어른들 마음은 달리는 자동차도 위험하고 혹 넘어져 무릎이라도 깨질까 불안하다.
한 번은 세발자전거를 태워 아이를 데리고 나갔더니 엘리베이터를 나서자마자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급하게 쫒아갔지만 아이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벽을 돌아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불안 했지만 설마 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아이의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쫒아갔더니 비탈길을 달리다가 자전거를 탄 채로 세멘트 바닥으로 굴러 벌써 얼굴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고 있다.
어린아이 하나 제대로 못 본다며 아내한테 한소리를 들은 건 그만 두더라도 아이의 얼굴에 상처가 아물기 까지 보름 남짓 내가 다친 것 백배이상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넘어지고 다치고 무릎이 깨지는 것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걱정인 것은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될까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정말로 스스로 찾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면 어쩔까 하는 방정맞은 상상도 하게 된다.
염려가 되어서 전화번호와 이름이 쓰여 진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 주라고 아이 어멈한테 주문한 적이 여러 번이다. 대답은 들었는데 여태 만들어 오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바쁘게들 살고 있으니 시간이 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윤우가 연말연시 연휴 일주일간을 어미와 함께 지내고 돌아왔다. 그런데 전에 없었던 습관이 생겨났다. 밤이 이슥해져 사위(四圍)가 조용해 질 때면 어미 생각에 젖는 것 같다. 그 날도 자리에 누워 밤하늘에 떠있는 하현달 밝은 빛을 가만히 내다보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라면서 흐느껴 운다. 그 동안 제 집에서 어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온 까닭에 그 정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나도 이런 날이면 옛 일이 떠오르고 생전의 어머니도 그리워지는데 하물며 이제 만 세 살이 채 안된 어린 아이가 어찌 어미 품이 생각나지 않으랴. 어린 심정을 이해하다 보니 나 역시 한참동안이나 처연한 기분에 젖게 되었다.
선친께서 돌아가신 그해 말에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첫 추위가 시작되던 날 집을 떠나 입대자 집결지로 향하는 나를 보내면서 ‘너까지 군에 가고 나면 나는 어떻게 사니?’ 라며 눈물지으시던 어머니가 눈에 선 했다.
논산 훈련소 황토바람이 사납게 몰아쳤고 고단한 훈련이 날마다 계속되는데도 힘든 것도 모른 채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그립고 측은했다. 달빛 교교한 어느 날 밤 고단한 육신인데도 잠이 오지 않아 창밖으로 새어 드는 달빛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짓던 반세기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이 지나자 딸아이는 윤우의 이름과 보호자 전화번호가 새겨진 목걸이를 사 들고 왔다. 어린이 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캐릭터 모양인 금속판에 어미의 연락처와 아이의 이름이 예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목에 걸어주면서 아이에게 이른다.
“윤우야. 밖에 나가서 놀다가 집을 잃어버리게 되거든 ‘여기 엄마 전화번호 있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알았지?”
처음엔 곧잘 대답을 한다. 주입시키기 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 가르쳐 주었더니 아이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윤우가 밖에 나갔다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물었더니 갑자기 엄마 품으로 달려들어
“엄마 사랑해요.” 라고 말하면서 통곡을 한다. 윤우의 감성이 정말로 엄마를 잃어버려 거리를 헤매고 있는 자신을 상상했나보다. 그런데 어미를 잃어버린 상상은 아이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몇 번이고 주입을 시켜주던 어미도 두 눈이 발갛게 충혈 되면서 아이를 꼭 껴안는다.
곁에서 듣고 있던 할미와 나 까지도 험한 상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목이 메는 애처로움에 한 동안 촉촉한 분위기가 되었다.
뜻하지 않은 사연으로 아이를 잃고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비록 상상 속에서 아이를 잃었을 뿐인데도 이토록 불쌍하고 서러운데 어느 낯 선 곳에 자식을 잃어버리고 전국을 헤맨다는 많은 부모들의 아픔은 어떠하랴.
先人들은 아이를 길러보지 않고는 감히 어른이라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윤우 어미도 명색이 어미이지만 우리부부의 딸 일 수밖에 없는 영원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러나 윤우를 키워 가면서 조금씩 어른으로 성숙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자제품이고 진열장 안이고 손에 닿는 대로 휘 젖고 잡아당기는 천둥벌거숭이, 무엇이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누르고 두드리고 돌려보는 호기심 때문에 수시로 망거트리기도 하고 설정해 놓은 복잡한 음향기기를 어긋나게도 한다. 그래도 신경이 쓰일 뿐 밉지는 않다.
내 핏줄이니 그러하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아이가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