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성탄 전야가 조용히 깊어 간다. 이곳 산골로 거처를 옮긴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인데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이 울적하다. 책을 들여다보나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TV를 볼까 하지만 라디오마저도 수신이 어려운 난시청지대인 관계로 심한 잡음에 시달리는 것이 피곤할 뿐이다. 읽다가 접어둔 수필집을 다시 손에 든다. 밖에선 하릴없는 진돌이 녀석이 밤 시간이 무료 한 듯 두어 번 짖어댄다.

성탄은 아기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구세주로 오신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화목제 이신 것을 생각하며 기쁨가운데서도 경건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근년 들어서는 불교계에서도 성탄을 축하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기독교인이거나 타 종교인들이라 할지라도 다 같이 즐겁게 맞이하는 성탄절의 전날 밤이 조용하게 깊어간다.

창을 열어 밤하늘을 쳐다본다. 수많은 별들이 산비탈 나뭇가지 위에 내려와 앉아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올 성탄절에도 눈은 내리지 않을 것 같다.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종의 비리와 크고 작은 부정부패로 온 국민은 사회와 정치권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이러한 때 흰 눈이라도 풍성하게 내려주면 상처받은 민심이 조금쯤 위안이 될 수도 있으련만 밤하늘은 총총하기만 하다.

내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엔 많은 눈이 내렸던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 성탄절 이른 새벽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에 교회의 찬양대원들은 성도들의 가정을 차례로 찾으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부를 때 흰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이때 미리 준비한 따끈한 차나 과자를 나누며 덕담을 주고받으면 성탄의 분위기가 고조에 달했다. 지금도 새벽 송 의 아름다운 관습이 남아있는 교회가 있다고 하나 아파트가 밀집한 도시에서는 이웃의 安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없어진지 오래다.

문뜩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이 궁금해진다. 아이들은 모두 귀가는 했는지, 이 늦은 밤 어디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으로 전화를 건다. 마침 모두가 들어와 있었고 내일 아침 성탄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딸아이가 대견스러워 믿음이 간다. 제 어미는 어디에 있는지 전화에 나오지를 않는다.

예년의 이 시간에는 케이크를 준비해서 촛불 밝혀놓고 모두가 둘러앉아 가족 예배를 드렸다.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던 지난날 에 비해서 오늘은 그리 하지 못하는 마음이 허전하고 아이들에게도 미안스럽다. 하지만 올 성탄절은 가족들과 각각 다른 곳에서 보내게 된 것도 그분께서 계획하신 섭리라 믿으니 마음이 편하다.

조용히 깊어 가는 산중의 한밤에 두 살짜리 진돗개 가 짖어댄다. 녀석도 지루하고 심심할 때 짖는 소리와 주위를 오가는 작은 짐승들의 움직임을 보고 짖어대는 소리와는 구별이 된다. 그런데 이번은 누군가 인기척으로 인해 짖는 소리다. 긴장한 채 다음을 기다리는데 이놈은 짖기를 멈추고 반가움에 꼬리를 흔드는 낌새다.

이 밤에 누구일까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의 모습이 활짝 웃으며 들어선다. 아내가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적적하던 마음이 금방 밝게 피어난다.

큰딸아이 직장 출근 문제와 그 아래 아이들 등교 뒷바라지로 아내는 집에서 생활한다. 때문에 일주일이나 이 주일에 한번 꼴로 이곳을 찾는다. 다 늦은 나이에 주말 혹은 격 주말 부부로 생활패턴이 바뀌니 불편한 점도 많지만 좋은 면도 없지 않다. 새로울 것도 설레 일 것도 없는 오랜 부부의 관계성이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서로에게 필요한 지체였음을 재확인하는 유익한 기회로 만들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들고 온 꾸러미를 풀어 작은 케이크 상자를 꺼낸다. 하얀 크림 위에 초콜릿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써넣고 초록색 나뭇잎과 빨간 열매 그리고 앙증스러운 금색 종을 만들어 넣은 데코레이션 케익이다.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잠시 기도한다. 지난 허물 꾸짖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집에 두고 온 자녀들과 본 교회 그리고 지금 섬기고 있는 여기 산골 교회 교우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아랫마을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것이다. 성가대 인원만 천여 명에 달하는 대형교회에만 예수님이 오시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십 명 안팎의 전 교인이 가족처럼 따듯한 정 을 나누고 서로의 기도제목 까지 터놓을 수 있는 이 작은 교회를 섬기는 요즘의 생활이 신선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신앙을 키워온 본 교회에 등록되어 있는 내 입장에서 이곳에 교적(敎籍)을 옮길 수가 없어 그냥 손님처럼 오가는 것이 죄스럽다.

소란스러운 세상을 멀리 한 것 같은 아내와의 시간이 단출하다. 성탄절이 밝아오는 깊은 밤 홀로 있는 산중에 찾아온 그녀의 사랑이 고맙기도 하다. 결혼 전 연애 할 때의 애틋하던 마음과는 또 다른 깊고도 진한 그 무엇이 가슴을 적신다. 이 지구상에 우리뿐인 것처럼 고독한 듯 행복한 시간이 흐른다.

초저녁 같은 기분인데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밤새워 불침번을 서는 영리한 초병 진돌이 하며 집안 구석을 둘러보는데 도시와는 다른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도 빛난다. 싸늘한 밤바람이 매섭다. 동방에서 박사들을 인도하여 아기 있는 곳에 머물렀다는 그날 밤의 별은 어느 것인가. 방으로 들어와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등불을 끄려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찬송소리가 천사들의 노래처럼 들려온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나그네 신자인 내 집에 새벽 송을 불러주기 위해 아랫마을 성도들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예배 때마다 성가대로 봉사하는 신실한 얼굴들이 차가운 밤바람 속에 둘러서서 찬양을 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새벽 송 의 축복을 받으며 진정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를 만난 것 같다. 혼자만의 산 속 생활이 외롭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축복을 내 곁에 준비해 두신 그분이 계셨기 때문이었구나...

찬양으로 오신 주님을 만난 성스러운 밤이 새벽을 향해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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