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선 박사
           김형선 박사

지난 30년 동안  다니던 모 중소기업 임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최수길(61ㆍ가명)씨.
IMF라는 서슬퍼런 고비도 넘기면서 꿋꿋하게 정년을 채운 최 씨는 퇴직 후 자신에게 핑크빛 노년이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조그마한 아파트도 한 채 있고 퇴직금도 두둑이 받았다.
직장생활 30여 년 동안 아내가 알뜰살뜰 월급을 모은 통장잔고도 꽤 많았기 때문에 마음 자체도 여유로웠다.

시집을 가지 않은 노처녀 딸과 취업준비생인 아들이 있지만 번듯하게 자라준 자식들이었기에 큰 돈 들어갈 일은 없을 것도 같았다.

▲퇴직 후의 현실을 생각하라!
하지만 퇴직 후 현실은 달랐다. 당장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자 위기감이 들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지옥 같던 출근 전쟁이 사라지기만을 바랐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옥죄기 시작했다.

아내의 잔소리도 늘어갔다. 친구들의 남편은 퇴직 후에도 여기저기에서 불러 일을 한다는데 왜 당신은 한창 나이에 집에서 빈둥거리느냐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취미생활을 하고, 아내에게 못다 한 사랑을 베풀며 아름다운 황혼을 보낼 것이라는 꿈은 퇴직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이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있었다. 모아둔 돈과 퇴직금이 아직은 통장에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5억 원 남짓한 돈이 그의 노후를 지탱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최 씨의 착각이었다. 먼저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선언한 딸에게 만만치 않은 돈이 결혼자금으로 들어갔다.

취직을 못한 아들도 여전히 그에게는 숙제였다. 목돈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꼬박꼬박 나가는 용돈과 학원비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노후준비는 철저하게 하라!
그제야 노후준비를 너무 안일하게 여겼던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러한 후회로 결국 창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업종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로 정했다. 아내와 함께 비교적 힘들지 않게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한 최 씨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베이커리를 열기로 결정했다. 창업하는데 드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돈만 내면 업체에서 대부분을 알아서 해줬고 일사천리로 창업의 꿈을 이뤘다. 생각보다 큰돈이 들어갔지만 이 빵집이 남은 여생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현실은 냉혹했다.
비교적 목이 좋은 상권에 점포를 내서 매출은 높은 편이었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수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건비, 월임대료, 각종부가세, 관리비, 카드수수료 등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아무 대책도 없이 노후를 맞는 것은 재앙이다!

 
 


설상가상으로 점포를 냈던 당시에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붐이 일었다. 한 동네에만 해도 같은 브랜드의 빵집이 우후죽순 생겨나 매상은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쉽게 사업을 접을 수도 없었다.

점포를 내는데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것마저 포기한다면 남은 인생이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씨는 ‘아무 대책도 없이 노후를 맞는 것은 재앙’이라며 ‘암보다 무서운 것이 준비 없는 노후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이 같은 현실은 비단 최수길씨 만의 모습은 아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대한 걱정은 많지만 준비는 여전히 부실하다. 하루 먹고 살기가 빠듯한 서민들에게 ‘노후준비는 사치일 뿐’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기대수명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은퇴 후 소득이 불안정해진 노인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선진국과 같은 공적ㆍ사적 연금시스템에 의한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이 절대적으로 미흡하다는 현실 탓이다.

실제 한국은 현재 노인 일자리가 질보다는 양적으로만 팽창돼 있다. 일단 선진국에 비해 노인들이 일을 너무 늦게까지 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나 소득보장제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기대수명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60세 은퇴ㆍ80세 수명’에 따라 짜여 있다. 때문에 필자는 제대로 된 노후준비를 위해 우선 은퇴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준비가 없는 노후는 재앙이라고 재차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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