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501호 할머니도 우리 못지않게 기뻐하고 있더라고 했다.

그런데 지갑 안에 있던 현금 중 만 원짜리는 없어지고 천 원짜리 아홉 장만 남았더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아까워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만 원짜리 몇 장까지 십 여 만원은 족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모두 없어졌다는 우리말에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지갑을 주운 장소는 우리가 차에서 내린 바로 그 자리가 틀림없다고 했으니 습득한 시간은 중요치 않다. 그렇다면 다른 누구도 이것을 손에 넣었던 이는 없다. 그런데 지갑을 경비실에 맡기고 온 당사자는 그 댁 할머니가 아니고 남편 되는 나만큼 늙은 영감님 이라는 것이다. 마침 그 분은 지금 출타중이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지만 귀가 후에 확실 하게 묻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건은 ‘잃어버린 이가 더 죄가 많다’ 라는 말은 수많은 선인들이 경험하고 느끼고 공감한 바에 의한 결론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물건을 도둑질 해 간 범인이 있다면 그는 남에 물건을 훔친 사실 한 가지만의 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물건을 잃어버린 측에서는 범인이 확인 될 때 까지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 선한 이웃들 까지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완벽한 정직성은 이번 일로 검증되었으니 당연히 제외하고라도 그 분이 전해준 지갑을 가지고 가던 영감님 마음속 어떤 검은 그 무엇이 작용해서 만 원짜리 열 석장을 중도에서 가로챈 것은 아닐까. 이런 망령된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나와 내 아내를 너무 부도덕하고 싸가지 없는 속물로 몰아세우진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이고 그러한 망령된 추리는 곧바로 취소하고 오히려 죄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측이 더 죄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오후에 접어들자 501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 되는 영감님이 외출에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 할머니의 손을 떠나 경비원에게 전달되었던 과정의 자초지종을 물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갑을 경비실에 맡긴 영감님은 “이 지갑 안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가지고 왔으니 주인이 찾으러 오거든 돌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우리는 되 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쉽게 추리 할 수 있다. 용의자 검거는 시간문제만 남은 셈이다. 경비실을 혼자서 지키고 있던 늙은 경비원 아저씨는 지갑 안에 있던 돈의 액수는 확인하지 않았다는 501호 영감님 말씀을 듣고 만 원짜리 열 석장은 자기의 주머니 속으로 빼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도 원래는 정직하고 올바른 사회 구성원이었을 것이다.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으로 퇴직한 뒤에 살림이 어려워 졌을 것이고 많지는 않아도 모아놓았던 노후자금은 1남 2녀를 위해 다 썼을 것이다. 세 아이 결혼시키고 분가하는데 도와주고 생활이 궁핍해 졌을 때 이곳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어려운 살림은 마찬가지인데다가 아내는 오랫동안 만성 신장병이나 심한 당뇨로 자리에 누워 투병하고 있는 형편일 것이다. 퇴근길에 모처럼 아내가 좋아하는 파인애플이나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라도 넉넉하게 사 가려고 만 원짜리 몇 장에 잠깐 양심을 팔았을 것이다.

나는 평생 직업이 수사관이나 어떤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고 징계를 해야 하는 분야에 종사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내 자신 보다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의 형편에 대해서 더욱 고민하고 배려하고 싶은 심성인 것을 떠올리면 내 본연의 직업에 충실 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 있다가 501호 할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경비실에 전화를 넣었는데 마침 그날 근무했던 담당자는 오늘 비번이기 때문에 본인과는 통화하지 못했지만 오늘 근무자에게 어지간하게 야단을 치고 으름장을 놓은 모양이었다.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관리실에 연락하고 경찰에 고발해서 확실하게 집고 넘어갈 것이라며 동료 경비원에게 호되게 겁을 주었다고 했단다.

글쎄 이런 경우가 경찰이 개입해서 의법 조치까지 할 만한 사안인지에 대하여는 모르겠지만 “지갑 안에 만 원짜리 열 세장을 확인하고 우리 영감한테 보냈는데 그 돈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 할 것이냐” 라고 추궁했더니 전화 받은 이는 내일 당사자에게 그 대로 전 하겠다 면서 해결해 드릴 것이라는 대답만 되풀이 하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잃어버린 측이 더 죄가 많다는 결론은 지당한 말씀이다. 아무런 문제없이 자기 직분에 충실하던 경비원인데 이번 일로해서 그는 아마도 해고당하고 말런지 모른다.

읽는 이들이 지루해 할 터이니 이제 그만 이 글에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튿날 아침나절 나는 일찍 외출을 하고난 뒤였는데 담당경비원이라며 우리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선량해 보이는 인상에 나 보다는 젊어 뵈는 경비원이 정복을 입고 금테 두른 모자 까지 단정하게 쓰고 우리 집 벨을 누르더라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말 할 것도 없이 그는 아내의 지갑 속에서 꺼냈음 직한 바로 그 만 원짜리 열 세장을 곱게 접은 채 아내에게 전해 주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우 대개 찾아가는 이가 없어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그런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며 정중한 사과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려던 당사자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친밀감까지 들더라고 했다. 아내는 돌아가려는 그의 손에 만 원짜리 석장을 쥐어 주면서 “감사합니다. 퇴근 하실 때 부인께 과일이라도 사다 드리세요.” 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분의 부인은 와병중인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가 돌아가고 난 다음에 아내는 501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잃어버린 지갑과 지갑 속에 들어있던 전액을 찾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함께 “이번 일은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 고 했다.

그것은 그 할머니가 관리소장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해당 경비원을 인사조치 해야겠다는 계획을 고려하거나 취소하는 편이 좋겠다는 우리의 입장을 전한 것이었다. 만약에 담당 경비원 한 분을 해고시킨다고 우리에게 무슨 소득이 돌아오랴.

아니 소득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한 사람을 생업의 일터에서 밀려나게 하면서 까지 내 소득을 원치는 않는다. 다만 그가 종전과 다름없는 자세로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하면서 앞으로도 혹 있을 런지도 모를 우리와 같은 주민들에게 좀 더 정직한 모습으로 대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세상에는 사람 숫자만큼 많은 일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져 간다. 특별하게 완벽한 이가 아니고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잃었던 물건은 찾을 수도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정직한 이가 있는가 하면 찾아준 물건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람도 있다.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미련을 쉽게 지우지 못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찾으려 애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쉽게 단념해 버리는 실속 없이 사는 이도 있다.

미국 작가 피터 드브리스 의 표현 대로 인생은 밀림속의 동물원이라는(Life is a zoo in a jungle) 말이 맞는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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