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화 수필가
▲서대화 수필가

토요일 오후에 귀가하자 아내가 “포항 친구가 과메기 한 상자를 보내 왔다” 고 한다.
그런데 과메기와 함께 곁들여야하는 양념이 없다며 동네 마트로 쇼핑을 가자는 것이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공복감도 들고 주말 이니 뭔가 별식이 생각나던 김에 흔쾌히 동행했다.

걸어가도 되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자동차를 가지고 간 것은 얼른 다녀와서 시장한 속을 채우려는 의도에서였다. 다른 것은 집에 있다며 물미역과 쪽파 두어 단을 바구니에 담고 나가려 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막걸리 한 병도 슬쩍 담았다. 자동차를 타고 간 것에 비해서 싱거운 쇼핑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아내는 산 물건을 들고 차에서 내려 먼저 우리가 사는 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지하에 주차를 시키고 천천히 올라갔다. 시간은 흐르고 과메기와 막걸리 두어 잔을 마시고나니 기분도 좋고 포만감으로 평안한 여유도 느끼며 손자의 재롱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날더러 “혹시 내 지갑을 못 봤느냐”고 묻는다. 나야 운전만 하며 따라갔고 계산은 당신이 했으니 알 리가 없잖느냐 고 했더니 정말 그렇다며 여기저기를 찾는 모습이 부산해 보인다.

 있는 대로 먹고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다녀오지 않은 것만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것 같다. 아내는 마트에서 부터 자신의 행동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눈치다. 날더러 다시 마트까지 가서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시간이 늦기 전에 다시 그곳에 들러 자초지종을 말하고 혹 지갑 떨어진 것 있으면 달라고 했다.

그런 일 없었다는 점원의 말에 되돌아 나오려는데 우리보다 더 답답한 내색을 하던 직원이 제안한다. 그렇다면 CC TV로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다녀간 지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금방 우리들의 모습을 찾았다. 속일 수 없는 우리의 과거인 잠시전의 장면이 나오는데 아내는 계산을 마치더니 손에 지갑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비친다. 마트에서는 가지고 나온 것이 분명하다.

곰곰이 생각하던 아내는 차에서 내리면서 지갑은 무릎위에 두고 쇼핑백만 들고 차에서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다. 얼른 차고로 내려가 자동차 운전석 옆자리를 확인했으나 차내에는 없다. 그렇다면 차 밖에 떨어진 것이 확실하다. 정차했던 곳이 엘리베이터 타러 들어오는 현관문 앞이었고 우리가 들어오고 난 뒤에도 많은 주민들이 그 길을 통행했을 터이니 비록 어두운 밤이지만 아직도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못 잊어 그곳을 확인하나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허탈했지만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돌리고 집으로 올라왔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지갑 속에 들어있던 현금이나 카드에 대한 미련으로 편안할 수가 없다. 과메기 곁들여 마신 두어 잔의 막걸리의 취기도 금방 깨었다.

아내는 지갑 속에 들어있던 내용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현금 13만 9천원과 현금카드 그리고 웃고 있는 손자의 사진과 주민등록증이 들어있다는 짝퉁 구찌 지갑에 대한 미련을 쉽게 포기 할 수가 없어했다. 왜 안 그러겠는가.

들어오는 돈이라야 빤한 처지라 수입과 지출에 대한 대차 대조 가 늘 불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 잃어버린 현금에 대한 가치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좀 비싼 과메기 먹었다 생각 합시다.” 가망성 없는 일이다 싶으면 포기하거나 단념하기를 쉽게 하는 나로서는 다시는 생각하지 말자며 다른 이야기로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그녀의 끈질긴 집념은 편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아내는 그 시간에 관리실로 연락해서 방송을 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침 토요일 밤이라 직원은 모두 퇴근하고 기계실 담당하는 늙수그레한 밤 근무자 한 분과 통화하는 눈치다. 담당 직원이 퇴근한 후 이기 때문에 지금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좀 퉁명스럽다 싶은 대답을 들었나보다.

전화를 내려놓더니 혼잣말처럼 말한다. “주인 찾아 줄 생각이 있는 이가 습득했다면 방송하지 않아도 가지고 온다니 그럼 방송은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야 뭐야.” 지갑 안에 들어있었다는 현금카드는 그 밤으로 분실 신고와 함께 사용정지를 신청하고 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이튿날은 주일이다. 교회에 갈 준비로 다른 날 보다 좀 일찍 일어났다. 아내는 밤새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내게 한 가지를 주문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는 7동 출입문 앞에 떨어트린 것 같으니 지갑을 주운이도 우리 동에 사는 이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공지문 한 장을 써 붙여 달라는 것이다. 그것마저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이라는데 그런 것쯤 들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다. 교회에 가는 시간에 쫓겨 볼펜으로 적당하게 써서 붙였다.

어젯밤 6시경 7동 출입문 앞에서 지갑을 떨어트렸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습득하시고 주인에게 돌려주려 애쓰시는 분이 계시거든 연락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거 찾지 못하면 우리 마누라 죽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전화번호와 7동 801호 라고 썼다.

읽어보면 아시다 시피 나는 순전히 가망 없어 웃음꺼리가 될 것 같아 반 농담 삼아 써 붙이고 교회로 향했던 것이다.

 차 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차피 찾을 수 없을 것 같으니 그만 잊는 게 어때?“ 그러나 무엇보다도 만 원짜리 열세장과 천 원짜리 아홉 장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없어 했다. 예배는 한 시간 남짓 이어졌는데 아마도 아내의 머릿속에 설교말씀은 한마디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잊으려 하나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까운 생각을 억지로 누르며 예배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시간에 언뜻 한 마디 하고 넘어갔다. 잊어버린 아내의 지갑을 찾게 해 주셔서 저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시켜 주세요... 아멘...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요즘 십일조 헌금 제대로 하고 있나? 절기 헌금도 좀 넉넉히 하면 좋잖아 그게 다 깨우쳐 주시느라...” 말을 다 마칠 새도 없이 아내의 반격을 받았다.

“내 걱정 말고 당신이나 잘 해” 나 역시 잘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더 이상 계속하진 않았다. 증명서는 다시 발급받으면 되고 카드는 이미 사용정지 신고를 했으니 더 이상 손해 볼 일은 없고 다만 현찰 십삼만 구천 원이 아깝다는 것인데 그것도 며칠 지나면 잊혀 질 것이라는 내말에 그렇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깨끗하게 떨쳐 버릴 수는 없나보다. 넓고 깨끗하게 새로 닦아놓은 진접 신도시 고속화 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아내의 휴대전화에 벨이 울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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