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고유 주당풀이 전통문화로 보전 필요

 
 

‘쿵덕 쿵덕 쿵쿵 찡찡찡 삐이익 와~오~아’ 북과 징, 꽹과리, 장구 거문고, 태평소 등 악기를 두드리고 불면서 요란한 괴성을 울부짖던 정각쟁이(법사)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고요해 지자 원각보살은 작두 장군신장의 복장으로 작두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려 접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어 원각보살은 접신이 되자 생각보다 높이 하늘을 향해 뛰어 올랐다 내렸다 반복하더니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병자와 가족들에게 본래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공수(무당이 신을 받아 내는 소리)를 전달한다.

다시, 그 보살은 작두 장군신장의 복장이 휘날리도록 빙글빙글 돌다가 잠시 멈춰 작두를 입과 혀를 비롯해 팔과 다리, 발바닥, 얼굴 등을 베어 낼 듯이 힘을 줘 날이 날카롭게 서있는 작두를 상하로 문지르지만 살이 베어나가진 않지만 펼쳐지는 굿을 구경하기 위해 주변에 서있던 구경꾼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차마 똑바로 눈을 뜨고 그 장면을 관청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이는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리 한국불교태고종 산신암 원각보살(김향란·61), (사)대한경신연합회 세종특별자치시 본부장인 무녀가 펼쳐지고 있는 충정지역 고유의 굿으로 치병굿 중 작두타기를 시작하고 있는 모습이다.

굿당을 휘잡는 화제의 원각 보살(김향란 무녀)은 신내림 굿을 받지 않고 꿈을 통해 신을 받아 중생구제를 위해 굿을 펼치고 있는 특이한 경우의 무당으로 30여년 무속의 세계에 몸을 담았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꿈에서 지시받은 대로 찾아가 보니 당대 최고의 무당 곽 보살(유기정)에게 굿을 전수 받은 구수원의 김종락 법사다.

 
 

이때부터 원각보살은 곽보살과 김종락 법사의 제자가 돼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충정지역의 고유의 굿으로 길닦기를 비롯해 병굿, 미친굿, 삼신굿, 안택굿, 혼(넋)굿 등을 전수 받았다.

이런 다양한 굿들 중 특히 주당풀이는 원각보살이 가장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유명세를 떨치던 굿의 종류중 하나로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의 최고 무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주당풀이는 집을 근거로 해 사람에게 실리는 액운이나 액살로 풀이되고 있으며 그 액운이나 액살이 어떠한 상황에서 실렸는가에 따라서 주당의 유형을 정립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주당이 침입하는 것은 그가 태어난 사주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집의 상사나 혼사 등의 일시와 서로 어울리지 못할 경우 주당이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원각보살은 현대 호사스럽고 호화찬란한 굿의 운영 상태를 벗어나 옛 전통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굿의 형태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무구 제작과정을 본인 스스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스승들에게 전수받은 기예 즉 굿의 구성이나 진행과정을 고유의 전통대로 활용하고 있고 그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하다.

이와 더불어 치병굿(주당풀이, 작두타기, 미친굿)들 가운데 무당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작두타기는 병마의 치료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위험성이 높으며 의학이나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해 불가사이하다.

현재 원각보살이 시도하고 있는 작두타기에 사용되는 작두는 최대 총 48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개수의 작두를 타는 것으로 기록돼 있어 명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작두타기는 작두의 시퍼런 칼날을 이용해 두려움과 흥분을 높이는 반면 마지막 부분에 시행되는 삼지창으로 100㎏이 넘는 통돼지를 꽂아 접신을 통해 중심축을 삼지창 자루에 두고 세우는 장면은 명기에 가까운 기술이다.

원각보살이 행하고 있는 치병굿 종류인 주당풀이, 작두타기, 미친굿 등은 우리 고유의 굿으로 종합예술성과 전통성을 높이 인정받아 전국적으로 계승자에게 무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전승과 보전에 노력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세종시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보호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향란 원각보살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생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키워 졌으며 11살 시절 새엄마을 맞아 자라게 됐다”며 “성년이 돼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가난과 함께 찾아온 원인모를 병으로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자살을 시도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설명했다.

원각보살은 또 “내가 생사를 넘나들고 있을 당시 하늘에서 칡넝쿨이 동아줄 같이 내려오면서 어서 올라오라는 소리가 들려 그 넝쿨을 잡으려 하자 하늘에서 젊은 여자가 너는 아직 여기 올라올 때가 아니다 아래 세상에서 큰일을 할 몸이니 자식을 돌보면서 살아가면 남편도 잘될 것이니 내가 네게 신비의 힘을 주 마 하면서 칡넝쿨을 잘라냈다”면서 “이런 꿈을 꾸고 눈을 떴을 때는 내가 의식을 잃고 10일이 되던 날로 남편과 자식들은 울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네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하늘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배를 채워가며 생활을 시작했으나 또 다시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희귀병에 걸리게 됐는데 어느 날 보살 한분이 산에 올라가 산신할아버지에게 빌어야 살아 날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봉산에 기어 올라가 무조건 빌기 시작했다”며 “자식을 두고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절신한 맘으로 기도를 시작하니 갑자기 두 눈이 붙어버려 눈을 뜰 수가 없어 있는 힘을 쓰면서 더욱 애절한 맘으로 기도하자 감고 있는 눈 속에 집채만 한 불덩이가 눈 안에 가득 차더니 그 불덩이 속에서 한문인지 한글인지 모르는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는 것을 보자 서서히 눈을 뜰 수가 있어 이제 산을 내려가려고 하니 그동안 걷지도 못하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해 정상으로 돌아 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적을 직접 경험한 그녀는 “매일 아침 남편도 모르게 9년간 오봉산 바우배기에 기도하기 위해 다녔다”며 “어느 날 생존해 계신 친정할아버지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지 사흘이 지나 돌아가셨으며 그 후 1년이 지나 친정아버지가 타계한 상태에서 꿈에 나타나 금은보화를 주고 난후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흐뭇하게 말했다.

그런 꿈을 꾼 이후 “고조할아버지, 월남전에서 전사하신 문칸걸립장군인 작은할아지 등의 꿈을 다시 꾸고 난 3일 후로는 다른 사람들의 미래가 잘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 이후 신의 제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많은 재물을 얻게 되자 지난날 배고픈 시절을 잊지 않고 생각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틈틈이 도울 수 있는 여유까지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김향란 무녀는 “현재 우리의 전통 굿이 일반인들에게 불신과 미신으로 괄시 받기 시작하면서 전통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아야하는 굿이 점점 잊혀 져 가고 있는 아쉬운 현실이다”며 “물론 일부 타락한 무당들에 의해 굿이 무시당한 것은 사실이나 굿은 진정한 우리고유의 종교의식이나 전통문화로 반듯이 보전과 전승이 돼 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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