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쳤다고마! 이놈에 짜슥이!”

입은 갈수록 거칠어졌고 평소의 말은 언제나 냉소적이었다. 그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었고, 거칠고 메마른 말이 내 안에 가득했다.

어디서부터인가. 누구로부터인가. 따질 수도 없고 따져야 무익하다.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급한 일이다. 무엇보다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술기운에 이리저리 무딘 칼을 휘두르며 적을 만드는 나 자신조차도, 무슨 막대한 유산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그토록 궁금했던 것이었을까. 도대체 술판에서 진정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그저 상상만 할 따름이다.
 
그들도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수많은 후배들이 왔다 가고, 술이 도는 사이에 분위기는 조금씩 풀려갔다. 자정을 향하던 시간, 거나하게 취한 봉준이가 벼락같이 큰소리로 말했다.

 “기래, 기렇게 죽어야제!”

결과는 참담했다. 내 안에도 상처가, 같은 상처가 났고 함께 피로 흘렸다. 알고 보니 막말은 서로를 해치는 일이었다.

 “이런 새끼가!”

여기서 끝날 리 없다. ‘이놈 저놈’에 ‘소새끼’나 ‘니기미’ 쯤이 더 오갔을 게다.

그러고는 어둠 속에서 서로에 대한 혹은 자기 몫의 긴 연민과 반성과 회한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괴로움 정도가 아니라 적개심과 절망감, 공포심과 좌절감마저 느끼게 했다.

어디서나 가장 아픈 상처는 막말이다. 어려서 들은 욕설과 모욕은 거의 회복 불능이다. 그토록 심각한 일인데도 거친 언사와 욕설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까지 사석에서조차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오간다. 재판정과 설교단에서도 그런 표현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두렵다.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과 정서 뒤에 놓인 토론문화가 아련함과 아릿함과 적막과 고요로 담아낼 수는 없을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온 ‘충돌과 반동’ 이후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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