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동 노인회장 78세 이찰하

    이찰하 노인회장
    이찰하 노인회장
선생님! 얼마나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말인가. 우리는 초등학교 등 제도화된 학교교육 18년(초등·중·고·대학·대학원) 동안 많은 선생님을 맞아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익히며 바른 인간으로 성장해 그 교육을 바탕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낳아 준 이는 부모요, 바른 인간으로 성장시킨 이는 선생님이시니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쯤인가 글을 가르치는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글을 배우는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는 슬픈 이야기가 만연돼 있다.

또한 요즈음 신문 사회면에 초등학생이 훈도하시는 선생님의 뺨을 때렸다는 기사와 그 자리에서 학생의 어머니가 그 선생님을 때렸다는 기사를 읽으며 교심이 무너지는 엄청난 소리를 듣고 그 속에 선생님의 설자리는 잃게 되고 바른 교육이 이루어지기는 요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평생 선생소리를 듣고 살아온 나로 써는 부끄럼이 앞선다.

나는 묘한 시기에 태어나 해방 뒤에 학교에 가게 됐는데 장기초등학교 당암 분교장에 처음 입학을 하게 됐다. 교실이 없어 공회당으로, 이웃 동네 큰 사랑방으로, 여름이면 시냇가 큰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공부를 했으며 5·6학년 때에야 새로 생긴 초가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던 걸로 기억된다.

스승의 날이 도래하면 나는 당시 3년 동안 담임을 하신 임붕철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 유독 개구쟁이였던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회초리를 무척 많이 맞았는데 사회에 나와 제일 먼저 한일은 1.2회 졸업생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하고 임헌도 공주사대 박사님의 비문을 받아 선생님의 송덕비를 교정에 건립해 드린 것이다.

또한 당암초등학교 초대 교장이시며 이 학교에서 만 20여년 근무하신 임긍수 교장 선생님의 송덕비도 모금해 건립해드렸으며, 또한 세종시 금남면 소재 금호중학교 3회 졸업생인 본인과 1회인 고 강기세 선배와 함께 모금을 하고 임헌도 박사님이 비문을 맡아 초대 교장이셨던 김필제 교장 선생님의 송덕비도 교정에 건립해 드렸다.

제자로써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 굵고 높은 스승에 대한 은혜의 보답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또 나는 스승에 날을 전후해 중학교 때 은사님 중 생존하신 세분 남궁승 선생님, 이종복 선생님, 천종상 선생님을 동기생 몇 명과 함께 모시고 점심 식사를 같이하며 선생님들의 왼쪽 가슴에 카네이션 꽃 한송이 꽂아드리고 옛 고마웠던 정을 이야기하며 한 시간 가까이 웃으며 이야기하다 보면 늙으신 분이시지만 한껏 젊어 보이는 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나에겐 또 한분 잊을 수 없는 스승이 계시다. 교실 안에서 배운 바는 없지만 일년에 두·세번 거리에서 만나는 이웃학교(청주상고) 국어과 교사이셨던 유성종 선생님이시다. 만나 인사를 드리면 두손 꼭 잡으시고 조용한 음성 다정한 눈빛으로 오래도록 지켜 볼 테니 열심히 굿굿하게 살아가라는 훈도의 말씀이 내 생의 한 지침이 됐으니 어찌 내 스승이 아니시겠는가.
 
1958년 고교를 졸업하고는 다시는 못 뵙고 마음으로만 늘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가끔 신문지상을 통해서 선생님의 동정만 알고 지낼 뿐이었는데 53년이 지난 2011년 초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고 있는 벗으로부터 책 한권을 송달 받고 보니 뜻밖에도 꿈에도 그리던 유성종 선생님의 글 ‘조용한 도전 줄기찬 전진’이었다.

선생님을 뵌 듯 반갑기만 했다. 그 책을 통해서야 선생님의 행적을 알 수 있었다. 충북 교육감 두 번, 주성대학교 총장, 교육부 장학편수실장을 거쳐 국립 교육평가원장(차관급)을 지내셨고 현재는 도산서원 상유사(원장)로 계심을 알았다.
반가운 김에 전화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초라하고 건방진 생각이 들어 미루고 있다가 5월 15일 스승의 날에 받으시도록 글을 올려드렸다. 후배와 제자위해 더 크고 좋은 일 하시도록 건강하시라는 내용이었다.

바로 선생님의 회신을 받고 53년 전 선생님의 그 모습과 그 훈도의 말씀이 되 살아나 그 고마운 정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어언 세월은 흐르고 지난해 5월 스승의 날에 편지를 써 금년이 다가기 전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말씀을 드려 지난해 10월 뜻을 같이 하는 젊은 벗 송승호 예비역 대령과 선생님을 찾아뵀다.
 
지난 53년의 세월은 참으로 긴 세월이었지만 늘 뫼시고 계셨던 것처럼 다정하고 거리감이 없었으며 곳곳하고 당당히 바르게만 살아오신 선생님을 뵐 수 있었으며 아직도 사회와 나라를 위해 하실 일이 많으신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또 청을 드렸다.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공직이신 도산서원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퀘히 응하시며 동행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 해 11월 눈이 쌓인 경북안동의 도산 서원을 찾아갔다. 퇴계 이황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도 보았고 도산서원 전교당에서(보물 제210호) 퇴계선생의 영전에 향불 피우고 배례도 드렸다.

선생이 가신지 5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세계각지에서 도산 선생의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 있고 그를 숭모하는 제자들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승과 제자의 한계는 끝도 한도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퇴계 선생의 종가 댁에서 차 한 잔을 대접받고 종손 되는 분의 진지한 이야기도 우리에게 많은 걸 일깨워 줬다.

돌아온 얼마 뒤 유성종 선생님께서 원장 직을 사임했다는 글을 받고서야 조용히 모든 공직을 내려놓으신 선생님의 뜻 또한 나를 숙연케 했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금년 스승의 날에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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