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전 부지사의 전략공천을 바라보며


요즘 '개혁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 수상하다. '과반의석 붕괴'의 충격 때문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눈앞 이익'에만 눈이 팔려 있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28일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명수 전 충남 행정부지사를 충남 아산 재보궐선거의 후보로 확정했다. 중앙당에서 후보를 직접 지명하는 이른바 '전략공천'의 결과였다. 물론 당헌·당규상 아무런 하자가 없는 공천이었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의 전력을 들여다 보면 그는 열린우리당의 옷을 입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공천이 확정되기 20일 전까지만 해도 자민련에 몸담고 있었다. 자민련은 어떤 당인가? 자민련은 열린우리당이 그토록 반대했던 '탄핵세력'의 일원 아닌가. 게다가 이 전 부지사 역시 '탄핵 찬성론'에 서 있었다. 한마디로 심판받아야 할 사람에게 공천을 준 셈이다.

이명수 전 부지사가 자민련의 정체성과 전혀 무관하다?

열린우리당이 이명수 전 부지사를 선택한 것은 그의 '당선가능성'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이 전 부지사만 공천하면 이번 재보궐선거는 하나 마나"라며 그의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특히 과반의석 붕괴는 그의 전략공천을 더욱 부추겼다.

공천심사위원장인 김태홍 의원도 이를 인정했다. 김 의원은 29일 오전 MBC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첫번째 기준이 당선 가능성이고 두번째가 지역 인지도, 세번째가 도덕성과 전문성, 개혁성, 그리고 네번째가 범죄경력"이라며 "당선가능성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자민련에 몸담았다는 사실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의원은 "자민련 사람이라기보다는 행정직에 있다가 지역이 충청도니까 자민련의 옷을 입고 나온 것"이라며 "그러니까 (열린우리당의 정신이) 크게 훼손되거나 그렇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이 전 부지사를 두둔했다. 28일 공천결과를 발표한 최규성 사무처장도 그가 행정관료였다는 점을 들어 "그를 자민련의 정체성과 직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당 안팎의 문제제기를 반박했다.

그렇다면 이 전 부지사는 정말 "자민련 정체성"과 전혀 무관한 것일까. 그는 17대 총선 2개월 전에 행정부지사를 그만두고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다. 총선 당시 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그는 '자민련 충성파'였음이 잘 드러난다.

17대 총선 당시 지역에서는 이 전 부지사의 탈당설이 나돌았다. 탄핵 역풍이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심해 일부 자민련 후보들은 탈당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서글픈 것은 지금의 낮은 지지도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머님의 영정을 뒤로한 채 전장으로 향한 이 충무공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 이 땅에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자민련은 이 충무공의 정신을 이어받는 국민의 손과 발이 되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며, 그 길에 이명수가 앞장서겠다."

이어 이 전 부지사는 "배신하지 않고 꿋꿋하게 민심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길"이라고 자민련을 탈당한 일부 후보들을 겨냥한 뒤 "결코 배신하거나 시민과 약속한 일을 말로 적당히 때우고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탈당설을 일축했다.

이런 정도의 '각오'는 일종의 '충성서약'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는 중부권 신당 바람이 불던 지난 9일 자민련을 전격 탈당했다.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는 그의 금석맹약(金石盟約)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휴지조각이 됐다.

탄핵세력 심판론 제기해놓고 이제와서 탄핵 찬성한 인사 공천?

 이 전 부지사 전략공천의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몸담고 있던 자민련이 탄핵세력의 일원이었다는 점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탄핵세력을 심판하자"고 목이 쉬도록 외쳐댔다. 그게 주효해서인지 이 전 부지사 역시 386세대인 복기왕 후보에게 2200여표 차이로 패했다. 열린우리당의 처지에서는 '탄핵세력 심판'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전 부지사에게는 탄핵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사실 그는 17대 총선 당시 몇몇 후보들과 함께 성명서를 내고 "대통령 탄핵안에 반대키로 한 당초의 당론이 찬성으로 선회한 배경과 이유를 밝히라"고 당에 요구했다. 탄핵 역풍을 고려한 정치적 행위이긴 했지만 당 지도부의 탄핵동참에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전 부지사가 4일 만에 꼬리를 내렸다는 점이다. 그를 포함해 성명서 발표에 동참한 후보들은 당시 해명서를 통해 "지난 성명서는 총선 승리를 위한 참된 충정의 발호였지 당 지도부와 당에 대한 어떠한 훼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자민련의 일원으로서 총재와 당에 대한 애정 및 각오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고 말했다.

탄핵에 대한 문제제기를 철회하면서 덤으로 자민련과 JP에 대한 충성까지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전 부지사가 총선 당시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고집을 피운 것이 탄핵을 초래했다"고 발언한 점이다.

이는 사실상 탄핵에 찬성한 발언으로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의 당원들이 그의 전략공천에 반발한 것도 이런 '전력'이 크게 작용했다. 열린우리당은 입이 열개라도 탄핵에 반대하며 152석이라는 거대의석을 선물한 지지자들에게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과연 "가치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나

열린우리당은 최근 과반의석이 붕괴하자 "우리가 언제 숫자로 국회운영을 해왔나?"라며 '의석수'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기자에게 "사실 과반의석은 상징적인 의미만 가질 뿐"이라며 "숫자에 의존해서 국회운영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의석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선가능성을 공천의 제1의 기준으로 삼아 당의 정체성과는 배치되는 인물을 전략공천한 사실보다 열린우리당의 진짜 속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이 전 부지사는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자신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새 신발을 사주면서 "가장 가치있는 발걸음으로 걸어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읽으면서 그는 물론이고 열린우리당은 과연 "가치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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