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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서 요양원이 부쩍 눈에 띤다. 그와 더불어 어느 때부턴가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효도인 양, 또 그것이 당연한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우리 삶의 최종 여정은 요양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마 뜨겁다.

그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실버타운이라는 것이 요즘 말로 대세였다. 집에서 모시기 어려우니 그곳에라도 편히 모신다는 취지에서 관심이 많았었다. 부모들도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마치 노후생활을 안락하게 보내는 양 자랑스럽게 입담을 늘어놨다.

그런데 그곳에 의탁하려면 계약금과 함께 매달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적지 않아서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류층에서는 그야말로 꿈같은 공간이기만 했다.

그러니 그곳에 의탁한 사람들은 자랑스러울 수밖에. 한 중견사업가도 그랬다. 그는 실버타운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실버타운에 의탁했다.

그런데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후회막급이었다. 그렇게 안락하게 노후를 보낼 줄 알았던 실버타운은 그 자체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생기 있는 것이라고는 시설 안에 있는 식물뿐이었다.

나이에 비해 일찍 시설에 들어온 그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자식들마저도 찾아오는 횟수가 뜸해졌다. 그러다 보니 없던 병도 생기도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극복하느라고 우울증에도 빠졌다. 그래서 다시 그곳을 나오려고 했지만 이미 자식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린 뒤였다.

 실버타운이 이럴 지경인데 요양원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강제로 들어왔든 제 발로 찾았든 일단 들어오면 살아서는 나가지 못하는 곳이 요양원이다. 제 정신 멀쩡한 사람과 치매 환자를 한데 섞어 놓아서 대화할 상대가 전혀 없는 곳도 많다. 그러니 그곳에서 살았다 할 수 있는가?

 김 할머니(89세)도 그랬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온 것은 2년 전이었다. 할아버지와 사별 한 후 자식들 집을 전전하다 할머니는 결국 반강제로 요양원에 끌려왔다. 김 할머니는 자식이 일곱이나 되었고 그 자식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이동전화번호도 다 외웠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이동전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며느리가 빼앗아 갔어”라고 말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할머니에게서 그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전화기가 필요 없으시죠”하면서 가져가는 며느리에게 늙은이가 전화가 뭐가 필요해 하면서 주었단다. 그리곤 자식들과 단절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계약이 성립돼가고 있다. “엄마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애가 잘못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제가 용돈을 드릴 테니 엄마가 좀 봐줘요.” 그러면서 한 달에 얼마씩을 용돈 삼아 받는다. 그러면서도 손자 봐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자기 사생활이 뺏긴다는 이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푸념을 해댄다. 심지어 봐주는 손주에게조차 “너 땜에 나는 아무 것도 못해”를 연발한다.

  자식이 집에 찾아와 미안함과 섬기는 마음이 들도록 하려면 이미 맡은 손주를 살갑게 봐줘라. 그리고 용돈을 받았으면 푸념을 절대하지 마라. 손주 봐주며 생색은 다 내고 용돈까지 받아가며 적다 많다 내 시간 다 빼앗긴다 넋두리 해봤자 자식들에게서 멀어져 갈 뿐이다.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 간이 어디 계약으로 끝날 일인가. 오죽했으면 천륜이라고 했을까. 그러니 요양원에 모셔다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것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하지 말자. 머지않아 나도 그곳에서 자식들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 먼저 해보자. 그러면 왜 부모 자식 간에 효가 필요한 지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자식이 일곱이나 돼도 이런 데 들어와"하던 김 할머니의 말이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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