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효교육원장 부근 최기복

지금 우리 사회는 심하게 갈라지고 있다. 어려 분야에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서도 그렇지만, 노년 층과 젊은 층이 서로 이해 화합하지 못해서다. 효에 관한한 이 문제는 더 이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젊은 여성과 노년 여성 사이에서 눈에 띠게 나타나는 부조화는 효의 실행을 한껏 힘들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효가 자리매김하려면 우선 여성들의 의식과 인식이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

과거의 무조건적인 봉양과 따름도 문제지만, 조건적이고 계약적인 부양과 도움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방에서 이해와 배려가 있지 않으면 효의 실행이 어렵다고들 말해오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섬기는데 무슨 까닭과 이유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라서 그렇다. 요 며칠 전에 종영된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드라마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4가지 조건을 서약하게 만든다. 물론 드라마라는 것이 현실성을 떠나서 존재하는 하나의 드라마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저 웃고말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와 가까워지고 사회현상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는 인식이 오래 전부터 배태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좀 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효는 실천은 따라하기에 달렸다.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자식의 자식으로 이어지는 효는 그래서 근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낳았으니 이제 갚아라’해서도 안 되고 ‘나를 낳았으니 책임져라’ 할 수도 없는 것이 부모자식 간이다.

그래서 란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우리 눈시울을 적시지도 모른다. 란란의 아버지는 시장 입구에서 리어카로 짐을 운반해 주는 짐꾼이다. 어느 날 시장 입구 식당에서 잡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식당에서 쓸 부식거리나 국거리 등을 운반하여 주면 항상 따뜻하게 차를 내주며 웃는 모습이 천사 같은 여자가 아내가 될 줄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었다.

어느 날인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지금의 아내가 식당 입구에서 울고 있었다. 치근덕대는 손님을 뿌리쳤는데 그가 넘어져 다쳤고 그것을 본 식당 주인이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살고 있는 단칸방으로 데리고 왔다. 지금의 아내가 단칸방의 여주인이 된 사연이었다. 리어카를 놓으면 한 달을 채 살 수 없는 고달픈 삶이었지만 아내와의 삶은 행복하기만 했다. 리어카 운반 중에 버려진 야채나 물간 고등어도 아내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요리가 됐다.

아내는 일년이 채 못돼 입덧을 하기 시작하더니 란란을 낳았다. 가난은 운명이었지만 극복할 수 있었기에 시간은 꿈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시장 입구로 내려오는 계단 옆의 부서진 집을 하나 장만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일거리가 줄어들더니 이젠 하루 종일 리어카를 지켜도 손님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내가 옛날에 나가던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 없이 가난이 미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란란이를 지키느라 다른 일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을 잠깐 비운 사이 불이 났다. 그 불로 란란이가 6도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피부 이식을 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말한다. 피부는 내 것을 주면 되지만 피부를 이식할 비용이 없었다. 집은 팔 정도도 안 됐다.

의사는 전신 마취를 한 다음 피부를 이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한두 번에 끝날 수술이 아니란다. 란란이 아버지는 마취 없이 수술을 하겠다고 의사에게 간청을 했다. 의사는 마취없이 어떻게 수술을 하느냐고, 그리고 한두 번도 아닌데 매번 견딜 수 있겠냐고 손사레를 쳤다. 그러면 그럴수록 란란이 아버지는 무룹 꿇고 매달렸다.

란란이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국부 마취를 했다고는 하지만 살을 도려내는 그 질긴 고통을 오로지 란란이를 위해 참아냈다. 혹여 란란이에게 들릴 지 모르는 비명을 막기 위해 입속과 잇 사이에 수건을 넣어달라면서.

그렇게 수술은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그 횟수 만큼 란란이 아버지의 허벅지는 뱀이 또아리를 틀고 지나간 흔적이 늘어났다. 수술이 끝나는 난 의사는 말했다. “세상에서 당신 같이 독한 아버지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세상에 아버지는 많다. 아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그 아버지는 흔치 않다. 그러니 이 깊어가는 겨울에 안부 한 번 물어봄직 하지 않을까. 그 전화 한 통이 깊어지고 멀어지는 틈을 한껏 당겨주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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