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산사의 여정은 일상을 변화시키고 여행의 목적지를 명확하게 깨우쳐 준다. 어느 날 문득 나의 진짜 고향은 내 마음속에 본래부터 있어왔음을 알고 내 마음속에 안식처를 쌓게 되었다. 어느덧 돈과 명예만을 쫓는 허깨비 같은 자신을 뒤로하고 지혜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봄에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던 꽃들은 여름이 되면 시들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꽃도 사람도 모두 되돌아간다. 그것이 생의 끝인가.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생명들이 모두 끝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인가. 그 짧은 인생조차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무언가를 쫓고 무언가에 쫓기면서 허둥대다가 영문도 모른 채 떠나고 말면 그만인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 천재일우의 기회에 꼭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걸 꼭 찾아서 치열하게 실천해야지. 나의 진짜 고향을 찾아 내가 내 삶을 주도하리라…

간절한 목표를 세우고, 아침마다 저녁마다 다짐을 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본받아 도와 학문을 닦고, 책을 무섭게 섭렵하고, 명상을 흉내 내며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왠지 자꾸만 유혹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길을 보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밝은 빛도 보았지…, 아무런 뜻도 모르고 석가모니불을 염불하며 오르던 산사의 길과 어둠을 밝히던 등불, 그 불빛은 약하지만 따뜻했고, 그 길은 좁았지만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어…

나는 그 많은 길 가운데 하나의 길을 택했다. 그 길은 내가 한때 등불을 불심(佛心)에 이르던 길이었고, 그 길의 끝에는 내가 모든 생명을 바쳐 돌아가 의지하고픈 위대한 깨달음의 길이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생로병사의 윤회 속에서 슬프지 않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 나는 울었다. 그리고 가슴 깊숙한 곳을 흐르는 눈물 속에서 선명하게 다가오는 탄생의 외침을 보았다. 자비가 아니면 결코 일깨울 수 없었던 탄생의 외침, 고해(苦海)의 세계에 사는 모든 이들을 내가 모두 제도(濟度)하겠다는 큰 ‘원력의 일성(原力의 一聲)’을 마침내 들었다. 그것은 길의 시작이었다. 인간 ‘고타마’가 위대한 깨달음의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길을 모질게 가려했다. 그리고 새벽 강가에서 머리를 자를 때 세상을 향한 마지막 미련까지도 버렸다. 버릴 것을 다 버린 가벼운 존재로 길을 떠났다. 더 이상의 두려움도 슬픔도 나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다만 세상과 존재에 대한 미련과 깨달음에 대한 열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둠이 드리워져 이룬 그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무명(無明)과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미혹(迷惑)과 윤회의 길이었다.
과연 그뿐 이었을까.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고백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자극이 필요한, 매너리즘에 허덕이는 당시의 나 자신이기도 했기에…
여기서 나는 깊이 감춰뒀던 자신만의 재능과 창조물을 하나둘씩 드러냈다. 이 과정은 그렇게 이기적이었던 자신을 점차 보살피고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성숙(成熟)의 사다리였다.
 
무한경쟁에 떠밀리는 우리 인간들, 결코 나에게 부족한 것은 기회일까 기대일까. 아니면 정말 능력일까.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내, 단편 소설은 매우 비극적인 내용이었다.
한 사나이의 태어남 자체를 불운으로 여기며 비극으로 치닫고 몰고 간 매우 어설픈 내용이었다. 그 후로 이어서 펴낸 소설 역시 단편으로 비련의 여인을 주제로 한 슬픈 소설이었다.
내 할머니, 어머니가 품은 한을…
그 억 겹의 한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할지 고민했다. 
판소리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한때 방랑의 김삿갓이 되어 전라도 오지를 헤메기도 했어. 그때 한에 서린 판소리는 나를 심각한 염세주의에 빠지게 했어. 나는 모든 것을 잃었고 황량한 벌판에 내동댕이쳐졌어. 이 모든 허공에 덧없이 사라진 순간이었고 잃었다는 상실감은 나를 더욱 옥죄이는 고통으로 다가왔어.
신발이 닳고 닳을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어. 곱씹어야 했던 고통의 나날은 차라리 죽자는 생각에 투신을 결심하기도 했지…
그런 마음처럼 하얗게 질린 하늘을 보며 토해낸 한은 지금도 가슴 언저리에서 붉은 선혈(鮮血)을 흘리고 있다. 깊은 호수는 고요한듯 하지만 그 속에 소용돌이치는 변화와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는 법.
동양사상에 입각해 본다면 근본을 찾는 일이 결코 선을 긋고 내 것만을 따지는 그릇된 색터리즘으로 치부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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