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무의도와 송산’ 이라고 새겨진, 이 절해고도의 집필실 ‘무의산방(舞衣山房)’.
얼른 보면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 같은 느낌이다. 눅눅하게 몸을 감는 습기와 무섭고 흉측한 조형들이 늘어선 이 초현실의 무대. 여기저기 타조인지 공룡인지모를 그런 억센 발톱을 한 징그러운 여인이 치부를 드러낸 채 괴롭게 물구나무서듯 몸을 꺾고 있고, 보기만 해도 끔찍하게 뒤가 켕기는 윤회(輪廻)도 있고, 해골과 뺨을 비비는 편안한 남자의 얼굴과 벗은 여인의 엉덩이도 있다.
에로티즘은 쾌락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 억압에서 인간 해방을 꿈꾸는 상상이고 자유이고 영토이다. 그렇다면 그는 용혹무괴(容惑無愧)를 그리는 지도 모른다.

문우들과 이방인들이 가끔 바다와 함께 이 무의산방에 인간 해방의 에로를 주술에 걸린 듯 가상하게 감상하곤 한다. 그는 무엇에 심취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묵상에 잠겼다.
당시에 새로운 집필을 준비하기 위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자료가 필요했어. 그래서 최후의 만찬을 보러 이태리,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에 갔었지. 묘하게 그날이 3월 13일 이었고, 금요일 이었지, 마침 수도원의 휴식일 이었어. 결국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를 더 머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덤덤하게 무엇인가 한참을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무엇을 조심스레 읊조리고 있었다.

‘너희들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는 말이 예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직후 12제자의 놀라움과 동요를 테마로 하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 아닌가.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직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그림을 6년이란 세월을 걸쳐 완성했다. 12제자들의 정신적 충격을 묘사하기 위해 채택된 치밀한 구도는 상당히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는 신약의 구절과 관련된, 고도로 긴장된 순간을 묘사했다. 예수를 통해서만 해방될 수 있는 제자들의 내적 갈등과 긴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찬을 갖는 신약복음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롯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앉히는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돈주머니를 움켜쥐고 있는 가롯 유다는 유일하게 어두운 그늘에 앉혀 다른 제자들과 구별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폭탄 선언한 예수의 말씀에 제자들이 심한 자책감에 심리적으로 동요되는 극적인 순간을 택했다. 예수가 빵을 들어 축도하는 종래의 평범한 장면을 그는 택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는 예수의 선언에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각 제자들의 흥분과 공포는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증폭되고 그들의 몸짓과 손의 동작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자신들의 진정한 뜻을 알리지 못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는 자기의 숙명을 인식하고 조용히 외롭게 앉아있다. 침착한 마음의 상태를 나타 낸 듯 예수 앞의 식탁은 제자들의 것과는 달리 질서정연하다. 제자들을 휩쓸고 있는 격정의 파도를 초월하여, 예수는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구원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고난과 희생의 정신이 이렇게 고상하게 표현된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처음 인 것이다.
유대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에게 은화 몇 개를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 최후의 만찬 장면을 다 완성하였지만, 마지막 유다를 표현하기 위해선 특별한 모델이 필요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를 밀고한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기 위해 로마의 지하 감옥 속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한 죄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죄수로부터 가롯 유다를 묘사하여 그렸다. 그는 몇 달에 걸친 작업을 통해 가롯 유다의 모습을 완성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델은 이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다’라는 통고를 했다. 
그때 무릎을 꿇은 살인범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저 그림 속에 그려진, 5년 전 예수의 모델이 바로 나였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애끓는 슬픔과 좌절이 어떠했을까. 그 현실이 얼마나 잔혹하고 폭력적인가 실감할 수 있었어. 그 순간적인 배신감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얼굴이 성스럽고 깨끗했던 젊은이가 로마 최악의 살인마로 돌변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얼마나 크게 충격을 받아서인지, 이 그림 이후로는 예수에 관한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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