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은 문학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물이 썬 그믐밤, 칠흑의 개펄에 길게 촛불을 밝히고 담소하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난 여기가 점점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싫어, 인간들이 오면 시끄럽고…”
성격은 내성적이며, 행동, 말투는 뚝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목구비는 아주 뚜렷하다고 했다. 남자로서는 매우 깊고 진하게 잡힌 쌍꺼풀과 큰 눈, 안광, 콧날, 그리고 수염투성이만 아니라면 지금 불혹을 넘긴 나이인데도 그 젊은 날 헌헌(軒軒)했을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송산 하면 황소가 먼저 떠오른다 했다. 왜 그토록 황소를 좋아했을까? 그에게 있어 황소는 내 자신이자 민족의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우직하고 충성스런 황소, 하지만 화가 나면 거칠고 횡폭하기까지 한 황소. 황소의 커다란 슬픈 눈은 우리 민족의 눈빛은 아닐지.
그의 삶은 가슴시리고 격렬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뼈 속 깊이 느끼게 한다고 했다. 강렬하고 거칠며, 유희와 해학을 담아낸 글 속에서는 어쩐지 비극의 아픔이 눈에 들어온다고.
송산은 시인 이상, 백석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시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말을 삼키고 몸을 낮춘다. 덤덤하게 무언인가 기억하는 것처럼. 아련하고 애잔한 무엇을 조심스레 읊을 뿐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신이 예언을 해주지 않아 커다란 재난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며 떠들고 있었다. 그러자 백발이 성성한, 한 늙은이가 말했다.
“예언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화를 피하지 못할 걸세.”
늙은이는 젊은 날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신에게 제를 올리는 동안 무언가 훔쳐갈까 봐 불안했던 그들은 그 거지에게 먹을 것을 조금 주며 얼씬도 못하게 혼냈소. 한편, 제사장의 손녀는 신에게 제사 올릴 때 입을 흰 옷을 할아버지 몰래 곡물 헛간에 갖다 놓으러 길을 나섰지. 그런데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쳤소. 헛간 문 앞에 도착하니 그 거지 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손녀는 “이런 날, 여기 앉아 있으면 어떡해!”, “이 더러운 거지야!”, 라고 소리 쳤지. 옷을 놓고 나올 때도 거지는 헛간 문 앞에 있었고, 그날 밤 손녀는 거지가 자기 옷을 훔쳐갈까 걱정돼 다시 서둘러 곡물이 놓인 헛간으로 갔었다오. 어두운 헛간에 등불을 들고 들어가 짚더미를 뒤지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튀어나왔소. 당황한 손녀는 그 새의 목을 비틀어버렸는데, 그 순간 등불이 떨어지면서 불이 났소. 바로 그때 낮에 본 그 거지가 이마에 핏방울이 맺힌 채 짚더미에서 벌떡 일어났소. 불은 폭풍우와도 같이 온 마을을 휩쓸어버렸고, 다시 거대한 폭우와 함께 바닷물이 온 섬을 휩쓸고 지나갔지…”
잠시 숨을 멎은 듯 한숨을 길게 토하면서 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잃은 채 육지로 구걸을 하러 다녔고, 사람들은 거지 아이가 천사였고, 그를 매정하게 대한 대가로 바다 신이 노하여 무의도에 벌을 준 것이라고 말했소.”
다음에 이어지는 늙은이의 말에 숨을 죽여야 했다.
“…56년의 생을 홀로 살면서 그녀는 서른을 넘긴 어느 날부터 죽을 때까지 수의(壽衣)와 같은 흰 옷만을 입고 다녔지.”

고도(孤島)의 공간 속에 있는 흰 옷의 여인. 그리고 한자, 한자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과 같은 시를 적어 놓은 여인.
무의도의 훈훈한 바람을 가르며 곳곳을 기기묘묘하게 꾸민 신(神)은 그를 신선의 세계로 인도한다. 과연 이 신은 누구일까? 무의도에는 전해져 내려온다.
죽은 무희(舞姬)가 무의도를 먹여 살린다고.

몇 해 전, 전설 같은 이 얘기를 듣고, 자긍심을 갖고 플라멩코를 추듯 정열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쳐 죽을 때까지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자연에 순종하며 많은 작품을 쏟아내기로 결심했다.

나무와 인사하고 기린, 코끼리와 애기하며 회전풍차를 타고 하늘을 난후 아이스크림을 물고 놀이공원을 나선 어린아이처럼, 날개 짓을 따라 피터팬이 되어 환상의 동산으로 날아갔다.
달팽이, 버섯, 구름, 나뭇잎.
자연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사실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과 독특한 문필로 사람들에게 천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